[전문가 3人좌담]"조류→인간 전파단계… 인체감염 변종 대비"

  • 입력 2004년 2월 10일 19시 27분


전문가들은 사람간에 조류독감 변종 바이러스가 전염될 가능성을 걱정하면서도 닭이나 오리고기를 먹는다고 해서 조류독감에 걸리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왼쪽부터 모인필 박승철 이종구씨.  -김미옥기자
전문가들은 사람간에 조류독감 변종 바이러스가 전염될 가능성을 걱정하면서도 닭이나 오리고기를 먹는다고 해서 조류독감에 걸리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왼쪽부터 모인필 박승철 이종구씨. -김미옥기자
《조류독감 공포에 지구촌이 긴장하고 있다. 아시아는 물론이고 미국에서까지 조류독감이 발병했다. 전문가들은 이러다가 사람 사이에 전염되는 바이러스가 출현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의 공포심은 엉뚱하게 진행되고 있다. 사람들이 근거 없이 닭고기와 오리고기를 기피해 이들 고기를 취급하는 식당이 속속 간판을 내리고 있다. 심지어 식당 주인이 자살하는 극한 사태까지 생기고 있다. 외국 전문가들의 눈에는 과학적 상식을 무시하는 한국인의 행태가 희한하게 비칠 따름이다. 이에 본보는 질병관리본부 이종구(李鍾求) 전염병관리부장, 박승철(朴陞哲·의대) 고려대 교수, 모인필(毛仁筆·수의학과) 충북대 교수 등 전문가 3명의 긴급 좌담을 마련해 조류독감의 실체와 대책, 주의점 등에 대해 알아봤다.》

좌담 참석자들은 조류독감이 사람 사이에 퍼져나가는 일이 현실화되고 있으며 한국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특히 민간전문가 2명은 조류독감을 비롯해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광우병, 브루셀라병 등 세계적 골칫거리가 되고 있는 인수(人獸) 공통 전염병의 유행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기구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조류독감의 3단계와 독감 대유행

박 교수는 “조류독감이 인구 분포를 바꿀 정도로 맹위를 떨치려면 세 단계를 거치는데 현재 2단계로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1단계는 닭이나 오리 등에게서 조류독감이 발생하는 것이고 2단계는 조류에서 사람으로 바이러스가 옮겨 사람 사이에서 전파될 조짐이 보이는 단계이다. 3단계는 사람 사이에서 대규모로 유행하는 ‘실전 상황’이다.

“중국과 동남아에서 지금과 같이 맹렬한 기세로 번지면 결과적으로 돼지나 사람 몸에서 유전자 재조합을 할 가능성이 커지므로 대유행을 막을 길이 없다. 정부는 이르면 6개월 뒤 재조합 바이러스가 한국에 상륙할지도 모른다는 가정 아래 대책을 세워야 한다.” (박 교수)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면 인구의 20%에 전염되고 이 중 10%가 치료를 필요로 하는 상황이 생긴다.

이 부장은 “독감은 사스와는 달리 검역대책을 세울 수 없기 때문에 외국에서 조류독감 환자가 입국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는 조류독감의 치료제 확보, 진단시약 개발, 시약 개발 생산체계 구축 등의 대책을 마련 중”이라며 추후에는 백신 생산체계도 구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최소 25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1918년의 스페인독감과 달리 큰 피해는 없을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었다.

1918년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해여서 각국의 방역망과 의료시스템이 허술했고 사회적으로 영양 및 위생상태가 극도로 열악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은 전염병 예방시스템과 개인의 위생 및 영양이 우수하고 폐렴 치료 수준도 세계 정상급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국가별 영양, 위생, 의료수준의 차이에 따라 피해가 양극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한국의 실태와 정부의 대응

두 민간전문가는 지금까지 정부의 방역활동이 투명하고 신속하게 이뤄지고 있으며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이런 성과를 인정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모 교수는 “정부는 지난해 12월 세계 최초로 조류독감 발병 사실을 공표했고 이후 닭이나 오리에게서 조류독감이 발병하면 주위 3km 이내의 모든 닭과 오리를 폐사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양계농가 및 인근 주민, 폐사 담당자에게 보호장구와 예방적 항바이러스제제를 신속히 지급해 사람에게 감염되는 것을 차단했다는 것.

“2001년 미국에서 탄저균 테러가 발생한 이후 생화학테러에 대비하면서 보호장구와 방역 시스템을 준비한 것이 지난해 사스 검역에 큰 도움이 됐으며 올해에는 이것을 조류독감 방역 활동에 유익하게 이용하고 있다.” (이 부장)

그러나 두 교수는 사람의 전염병을 담당하는 질병관리본부와 동물 전염병을 담당하는 농림부가 별도로 전문가 회의를 갖는 등 협력에 다소 엇박자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인수 공통 전염병을 다룰 ‘전염병퇴치연구사업단’의 설립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전염병을 다루는 연구소가 많지만 연구소별로 특징이 다르다. 역량을 결집한다면 인수 공통 전염병에 대한 보다 효율적인 대처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모 교수)

이들은 또 이번 독감사태를 통해 테러단체가 독감 바이러스를 재조합할 가능성도 커졌으므로 이에 대한 대비도 시급하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떨 필요 없다

전문가들은 조류독감이 위험하기는 하지만 일반인이 지나치게 공포심을 가질 필요는 없으며 직접 병든 닭이나 오리를 다루는 사람만 주의하면 된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닭고기나 오리고기 등을 먹지 않는 것은 지나친 ‘건강염려증’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에 이어 조류독감이 발생한 일본에서는 닭고기 소비 위축이 없다는 것.

“조류독감 바이러스는 섭씨 75도 이상의 환경에서 죽기 때문에 익히거나 구운 닭고기에서는 바이러스가 살 수 있는 여지가 없다. 안심하고 먹어도 된다.” (모 교수)

모 교수는 계란껍데기에 배설물이 묻어 있다면 호흡기 감염이 우려될 수도 있지만 이 경우도 가능성이 작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는 계란을 판매하려면 GP(Grading & Packaging)센터에서 세척, 소독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바이러스가 ‘몰살’한다는 것.

전문가들은 또 닭고기는 질병과 싸울 때 필수적인 단백질이 풍부하므로 독감 대유행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충분히 섭취하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이에 더해 지금부터라도 위생적인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손 씻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또 손으로 얼굴을 만지는 습성을 버려야 한다. 위생적으로 생활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전염병에 걸릴 위험이 훨씬 적다.”

이성주기자 stein33@donga.com

▼참석자 프로필▼

●박승철(朴陞哲·64)

△서울대 의대 박사

△미국 조지타운대 교환교수

△고려대 전염병연구소 소장 등 역임. 국내 독감 예방시스템 구축에 기여

△국립보건원 사스대책자문위원회 위원장

△고려대 의대 교수(현)

△질병관리본부 독감자문위원회 위원장(현)

●모인필(毛仁筆·49)

△서울대 수의학과 졸업

△조지아대에서 조류독감의 메커니즘 연구 논문으로 박사학위 취득

△국립수의과학검역원 연구원, 질병과장

△조류독감 등 조류 질환 관련 50여편의 논문 발표

△충북대 수의학과 교수(현)

●이종구(李鍾求·48)

△서울대 의대 박사

△국립보건원 훈련부 보건행정담당관

△보건복지부, 국립보건원 방역과장

△국립인천공항검역소 소장

△질병관리본부 전염병관리부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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