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국가보다 세계속 시민국가 지향해야”

  • 입력 2004년 2월 17일 19시 33분


탁석산씨는 한국에서 신성시돼온 민족주의의 효용이 다했다고 주장하며 “민족국가의 국민이 되기 보다는 세계국가의 시민이 되자”는 도발적 제안을 내놓았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탁석산씨는 한국에서 신성시돼온 민족주의의 효용이 다했다고 주장하며 “민족국가의 국민이 되기 보다는 세계국가의 시민이 되자”는 도발적 제안을 내놓았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반공주의가 끝난 후 한국사회의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는 민족주의다.”

철학자 탁석산씨(47)가 한국사회의 주요 이데올로기인 민족주의에 비판의 메스를 댔다. 새로 펴낸 책 ‘탁석산의 한국의 민족주의를 말한다’(웅진닷컴)에서다. 탁씨의 민족주의 반성은 ‘국사해체’등 일련의 ‘민족주의 다시보기’의 연장선상에 있어 그 파장이 주목된다.

지난해부터 역사학자 임지현 교수(한양대)가 ‘국사해체론’을 주장하고, 소설가 복거일씨가 친일파 청산론 뒤에 숨은 민족주의의 그늘을 비판한 데 이어 최근에는 역사학자 윤해동씨(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가 민족이란 모호함 뒤에 숨어 모든 책임을 친일파에게만 전가시키는 행태를 비판했다.

한국인의 정체성 등을 연구해온 탁씨는 철학자, 사학자가 등장해 가상 토크쇼를 벌이는 형식의 이 책에서 “한국의 민족주의가 ‘근대를 시작해 국가건설에 이르는 사다리’로서 도구적 역할을 했으며, 그 형성과정이 5칸으로 이뤄졌다”는 독특한 가설을 제시한다.

▽민족주의 발전 5칸 사다리론=탁씨는 우선 한국의 ‘민족’이 1900년 전후에 생성된 ‘상상의 공동체’라고 분석한다. 1896∼1899년 ‘독립신문’ 등에 거의 등장하지 않던 민족이란 단어가 1904∼1910년 사이 ‘대한매일신보’에는 177건이나 등장한다는 것이다.

민족주의 사다리의 제 1칸은 1876년 개항∼을사조약이 체결되는 1905년. 외세로부터의 자주독립과 외세의 손을 빌린 근대화를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모순 속에 민족보다는 국가를 앞세웠다. 제 2칸은 1905년∼한일 강제병합이 이뤄지는 1910년. 자주독립국가 건설의 목표가 좌절되면서 감상적 정신력에 호소하게 됐고 ‘민족’이 급부상한다. 제 3칸은 일제강점기. 지역적 이념적 분열을 민족이란 감상적 단어로 봉합한 시기다. 제 4칸은 해방이후∼1990년. 국가건설의 과제가 본격 대두되면서 민족은 체제 간 정통성 다툼에 이용당할 뿐 사실상 잊혀진 시기다. 제 5칸은 1990년∼현재. 통일된 민족국가 건설의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민족’과 ‘국가’가 갈등과 긴장관계에 놓인 시기다. 민족통일이 절대선이 되었고, 반미감정이 솟구친 것도 이 때문이라고 탁씨는 분석했다.

▽민족 아닌 국가 선택해야=탁씨는 한국현대사에서 민족과 국가는 이항대립적 관계라고 분석한다. 국가건설이 불가능할 때는 민족에 기댔고, 국가건설이 화두로 등장할 때는 민족이 자취를 감췄다는 것.

탁씨는 사다리의 마지막 칸인 현 시점에서 “한국인은 민족 아닌 국가를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체가 모호한 민족 중심의 국민국가가 아니라 세계체제적 시민국가여야 한다는 것. 국민이 국가의 감시 대상이자 통합과 계몽의 대상이라면, 시민은 자신의 재산과 자유를 위해 국가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한국 시민이 되기 위해 반드시 한민족이어야 하거나 한국어를 해야 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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