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 간 근대 예술계 ‘뮤즈’…김향안 여사 美서 별세

  • 입력 2004년 3월 8일 18시 56분


시인 이상(李箱 1910∼1937)의 임종을 지킨 동반자이자 수화 김환기(樹話 金煥基 1913∼1974) 화백의 아내였던 김향안(金鄕岸 본명 변동림)여사가 지난달 29일 미국 뉴욕 맨해튼의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향년 88세.

김 여사의 장례식은 장남 김화영 환기미술관 이사장(50) 등 가족과 지인 100여명만이 참석한 가운데 3일 현지에서 치러졌고 유해는 뉴욕 근교 발할라 마을 켄시코 공동묘지에 있는 김환기 화백 묘소 옆에 안장됐다고 8일 환기미술관 측이 밝혔다.

김 여사는 서양화가 구본웅(1906∼1953)의 이복동생으로,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영문과에서 수학했다. 뛰어난 문학적 재능과 미모로 1930년대 문화계의 스타였던 향안은 20세에 이상을 만나 동거하다가 그가 27세에 요절한 뒤 수화를 만나 1944년 5월 결혼했다.

1955년 수화와 함께 파리로 유학을 떠났던 향안은 64년 뉴욕에 정착했다. 1974년 수화가 세상을 떠난 뒤 함께 살던 뉴욕의 아파트에서 남편의 유작과 유품을 돌보며 살았던 고인은 78년 ‘환기재단’을 설립해 수화의 예술을 세계에 알리고 한국의 젊은 작가들을 후원했다. 1992년에는 서울 종로구 부암동 산자락에 19억원을 들여 환기미술관을 열었다. 개관 이래 쉼 없이 ‘김환기 유작전’을 열어 온 환기미술관은 국내 유명 작고 작가의 기념미술관 1호로 사설미술관의 원조 격이기도 하다.

파리 유학 중이던 1956년 수화 김환기 화백(왼쪽)의 아틀리에에서 함께 자리 한 김향안씨. -사진제공 환기미술관

천재시인과 천재화가로 이름을 날린 두 사람의 반려자였던 고인은 수화의 전기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 환기미술관 설립 후일담인 ‘우리끼리의 얘기’ 등을 펴내기도 한 수필가로 평생 문화예술인들과 폭넓게 교제했다.

고인은 생전의 이상에 대해 “가장 천재적인 일생을 마친 사람. 그가 살다간 27년은 천재가 완성되어 소멸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고 평했으며, 수화에 대해서는 “평생 지치지 않는 창작열을 가진 예술가의 동반자로 살 수 있었음은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한편 고인의 사후 환기미술관 운영과 관련해 이 미술관 관계자는 “이사장직을 수화와 김 여사 사이의 장남인 김화영씨가 맡아오고 있기 때문에 운영방침이나 내용에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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