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도 약국도 없다. 장애인들을 비롯해 섬 사람들은 '앓아도 죽을 만큼 아프지 않으면 참고 넘기며' 지내야 했다.
김선혁(金善赫·49) 부천내과 원장은 외딴섬 장봉도에 17년째 한번도 거르지 않고 매달 한 번 이상 찾아와 약품을 기증하고 정신지체장애인들과 섬 주민들의 건강을 돌봐주고 있다.
인천에서 서쪽으로 21km쯤 떨어진 인천 웅진군 북도면 장봉도. 800여 주민과 90 정신지체장애인이 살고 있다.
지금은 인천국제공항이 생기면서 영종도까지 길이 뚫려 오가기가 편해졌다지만 그래도 영종도에서 뱃길로 다시 40분은 더 나가야 하는 쉽지 않은 길이다. 불과 몇년전만 해도 응급 환자라도 생기면 사정해서 고깃배를 얻어 타고 인천까지 2시간가량 뱃길을 헤쳐 나가야 했다.
"사람을 치료하는 일을 업으로 삼은 의사로서 해야 할 일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1988년 30대 초반에 우연히 방문한 장봉도에서 지체부자유자와 정신지체자들이 모여 사는 모습에 충격을 받고 시작한 일이었다.
말이 17년이지 병원이 있는 경기 부천에서 출발하면 2시간반 이상 걸려 7번이나 버스와 전철 그리고 배를 갈아타야 했다. 여름 휴가철이면 북적이는 관광객들로 영종도에 들어가기 위해 월미도에서 4시간 이상 배를 기다리기 일쑤였고, 겨울철이면 난방도 안 되는 배에서 몇 시간 동안 덜덜 떨어야 했다.
하지만 김 원장을 멀리 떠났던 부모만큼이나 반갑게 맞아주는 장애인들의 모습에 김 원장은 십 수년째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
"할.아.버.지. 아.파.요"
진료실에 들어온 한 정신지체장애인이 머리를 가리키며 두통을 호소한다.
뒤에 서있던 또 다른 장애인이 갑자기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나.도 여.기.가 아.파.요"라며 머리를 만진다.
'내 몸 아프다'는 말을 꺼내기도 힘든 섬 생활. 하지만 김 원장이 찾아오면 장애인들은 맘껏 털어놓는다. 아니 머리가 하얀 '40대 할아버지' 김 원장을 만나기 위해 없는 병도 만들어낸다. 이 때문에 그가 혜림원을 방문할 때면 항상 4,50명의 장애인들이 '할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진료소 밖에 몇 시간 동안 줄을 서서 기다린다.
"의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며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했던 김 원장은 2년 전 혜림원의 추천으로 모 사회복지재단에서 의료봉사상을 수상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나 보다 훌륭한 사람들이 많다"며 수상을 거부했다.
혜림원은 2003년에 그에게 알리지 않고 김 원장을 다시 추천했고 그는 상금으로 받은 2000만원을 모두 혜림원에 기부했다.
혜림원 이한영 관장은 "김 원장은 1999년부터 혜림원의 촉탁의로 지정돼 국가 보조금으로 매달 100여만원의 급여를 받지만 '이 돈은 내 돈이 아니다'라며 모두 혜림원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 혼자 한 것이 아니다. 주변에서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라며 한사코 말을 아끼던 김 원장은 "한달에 한 번 혜림원에 들르는 나보다 그곳에서 원생들과 함께 생활하는 보육사들과 간호사들이 정말 훌륭한 사람들"이라며 말을 맺었다.
길진균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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