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포커스]3代걸친 경제림 육성 정대용씨

  • 입력 2004년 4월 6일 18시 24분


30년 이상 정성 들여 키운 낙엽송이 때로는 자식처럼 느껴진다고 말하는 정대용씨. 봄 햇살 속에 우뚝 선 나무를 바라보는 그의 눈길에서 애정이 묻어난다.    -거창=성동기기자
30년 이상 정성 들여 키운 낙엽송이 때로는 자식처럼 느껴진다고 말하는 정대용씨. 봄 햇살 속에 우뚝 선 나무를 바라보는 그의 눈길에서 애정이 묻어난다. -거창=성동기기자
식목일을 앞둔 2일 오후 경남 거창군 북상면의 한 임야. 개울을 건너 산길을 따라 한동안 걸어간 끝에 쭉쭉 뻗은 낙엽송 숲이 눈앞에 펼쳐졌다.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덕유산 정상에는 벚꽃이 만개한 봄 날씨에도 불구하고 하얀 눈이 군데군데 쌓여 있었다.

“거창은 원래 나무로 유명한 고장입니다. 자유당 때는 벌채 허가를 받은 트럭들이 나무를 가득 싣고 하루에 50∼60대씩 들락거렸죠. 몰래 훔쳐가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마구 베어내고 심지는 않았으니 망가질 수밖에….”

말없이 걸어가던 독림가(篤林家) 정대용(鄭大龍·77)씨가 오래된 기억을 더듬으며 혀를 찼다.

하늘을 향해 반듯하게 뻗은 낙엽송들로 울창한 이 숲은 정씨가 말 그대로 피땀 흘려 가꾼 산물이다. 먹고살기 힘들었던 1960년대 후반. 정씨는 예전에 있던 나무가 잘려 나가고 잡목만 우거진 땅에 실속 있는 경제림(經濟林)을 가꿔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고, 이 생각을 우직하리만큼 밀고 나갔다. ‘경제림’이란 목재 등으로 사용할 목적으로 계획적으로 육성한 산림을 말한다.

그는 우수한 낙엽송 묘목을 구하기 위해 경북 봉화까지 찾아갔다. 당시로선 정부 지원은 꿈도 못 꿀 일. 그때 심은 손가락 굵기만 한 2년생 묘목은 이제 35년 세월이 흘러 전봇대보다 굵은 알찬 나무들로 변모했다.

“자식 같다는 느낌마저 듭니다. 나무를 돌보다 보면 산에서 내려오기 싫을 때가 있습니다. 몇 해 전 일본 홋카이도(北海道)에 갔더니 아름드리나무가 즐비하더군요. 느낀 게 많았습니다. 훌륭한 아름드리나무로 성장하게끔 60, 70년씩 키울 작정입니다.”

정씨의 인생은 나무와 더불어 살아온 삶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제강점기에 농사지으며 산림감시원 역할을 하던 부친의 영향으로 그는 거창농림학교 임과에 진학해 자연스럽게 나무와 인연을 맺었다.

6·25전쟁이 발발한 1950년 군에 입대해 5년간 군복무를 마친 정씨는 제대 후 부친에게서 물려받은 11ha 임지 외에 23ha를 추가로 매입해 본격적인 육림에 나섰다. 나무 심기와 관리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거창에 조그만 제재소를 차렸고, 이를 대구로 옮겨 지금껏 운영 중이다.

이젠 나이도 있고 사업 규모가 제법 커진 까닭에 대학을 나와 대기업에 다니던 첫째와 셋째 아들을 설득, 함께 일하고 있다. 3대에 걸쳐 나무와 인연을 맺은 셈이다.

정씨는 칠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손수 승용차를 운전해 ‘자식 같은 나무’들이 자라는 거창과 제재소가 있는 대구 사이를 수시로 오간다. 만만치 않은 거리이건만 10여년부터 시작한 아침 체조 덕분에 피곤한 줄을 모르겠단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춥거나 덥거나 매일 이른 아침 대구 두류공원에 올라 체조로 건강을 가꾼다.

정씨는 48년간의 꾸준한 노력 덕택에 거창군 3개면에 걸쳐 114ha의 넓은 임지를 소유하고 있다. 타인 소유의 임지에서도 풀베기와 어린 나무 가꾸기, 솎아내기 등을 해 그동안 육림 실적이 모두 700ha 이상이라는 게 산림청측의 설명. 그동안 심은 나무만 따져도 낙엽송이 31만그루, 잣나무가 3만그루에 이를 정도다.

정부는 이번 식목일을 맞아 48년간 나무 심기와 가꾸기에 정성을 쏟아 온 정씨에게 독림가가 받을 수 있는 최고 훈격인 동탑산업훈장을 수여하는 것으로 그간의 노력에 보답했다.

평생을 나무 가꾸기에 바쳐 온 그가 안타까워하는 점은 우리나라 산에는 경제림이 별로 없다는 사실. 심는 일만 중시하고 정작 중요한 숲 가꾸기에 소홀했던 결과다.

나무가 땅속에서 자양분인 거름기를 집중적으로 빨아들일 수 있도록 솎아내기를 해주지 않다 보니 잡목만 무성한 산이 많아졌다고 그는 지적한다.

“저기 산을 보세요. 쭉쭉 빠진 나무가 어디 있습니까. 다 잡목이지. 언제 어디에 심었다고 서류에 기록된 나무도 전혀 관리되지 않아 몇 년 뒤 죽어 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멀쩡히 직장에 잘 다니던 두 아들을 곁에 두기로 그가 결정한 까닭도 나무에 대한 투자는 자신의 당대에는 끝날 수 없는 ‘장기 투자’라고 믿기 때문이다.

“소망이 있다면 후손들이 산과 나무에 대해 잘 이해하고 이 일을 대대로 이어갔으면 합니다. 지금은 나무들이 어리지만 자식대, 손자대로 내려가면 충분히 보람이 있을 겁니다.”

거창=성동기기자 esprit@donga.com

정대용씨는

△1927년 생

△1945년 거창농림학교 임과 졸업

△1950∼55년 군 복무

△1962년 거창 진일제재소 창업

△1963년 대구 보성목재사 창업

△1976년 경남도지사 표창

△1982년 대구 대남제재사 창업

△현 우수 독림가, 대구 달서구 체조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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