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포커스]의학용어 우리말 풀이 사전 낸 지제근 교수

  • 입력 2004년 4월 25일 18시 30분


지제근 교수는 우리말 의학용어사전을 발간한 뒤에도 각종 강의와 학회 참석으로 바쁘다. 그는 24일 대한의사협회 대의원총회에 참석하던 중 잠시 짬을 내 인터뷰를 했다. -원대연기자
지제근 교수는 우리말 의학용어사전을 발간한 뒤에도 각종 강의와 학회 참석으로 바쁘다. 그는 24일 대한의사협회 대의원총회에 참석하던 중 잠시 짬을 내 인터뷰를 했다. -원대연기자
“아직 많은 의사가 목구멍을 ‘구협’, 광대뼈를 ‘관골’로 말하고 ‘꼬였다’, ‘삐었다’라고 하면 되는데 굳이 ‘염전’, ‘염좌’라고 말해요. 쉬운 우리말 용어를 모르기 때문이죠.”

대한의학회장을 역임한 지제근(池堤根·66) 인제대 의대 석좌교수가 최근 쉬운 우리말 용어로 의학 지식을 쉽게 풀이한 ‘의학용어 큰사전’(아카데미아 간)을 펴냈다.

이 사전은 2001년 대한의사협회와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의학용어집’을 바탕으로 의학용어 6만5000개를 풀이한 것이다. 핵심 용어 1만2000개가 빨간색으로 표시돼 있고, 지 교수가 직접 찍은 컬러사진 2000장과 연세대 해부학교실 정인혁(鄭仁赫) 교수가 지은 ‘사람해부학’의 그림이 곁들어 있어 일반인도 재미있게 볼 수 있다. 국내 처음으로 표준화 작업을 거친 본격적인 의학사전이 나왔다는 것이 의학계의 평가다.

지 교수는 “사전은 아무리 전문적 내용을 담고 있어도 중학교를 졸업한 사람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의사들이 쉬운 우리말 용어로 환자에게 설명하고 논문 교과서 차트를 쓰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의사 사회에는 쉬운 용어를 쓰지 않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풍토가 있지만 우리말 용어를 모르면 환자에게 병에 대해 제대로 설명해 줄 수 없어 좋은 의사가 될 수 없다는 것의 그의 지적이다.

이 사전은 지 교수가 의학용어 대중화 작업에 매달린 지 8년, 본격적인 원고정리 작업에 들어간 지 1년 만의 개가다. 그는 지난해 3월 서울대 의대를 정년퇴임한 뒤 책이 발간될 때까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자신의 사무실과 서재에서 원고와 씨름했다.

때 아닌 ‘입시병’을 앓기도 했다. 하루는 사타구니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가려워 병원에 갔더니 제자인 피부과 의사가 “나도 고3 때 걸렸던, 바로 그 입시병입니다”고 진단했다. 너무 오랫동안 앉아서 글을 쓰느라 곰팡이들이 사타구니에 둥지를 튼 것이었다.

지 교수가 의학용어 대중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부터. 1995년에는 ‘알기 쉬운 의학용어 풀이집’을 발간했고, 대한의사협회의 3차, 4차 의학용어집 저술 작업에 참여했다. 또 과학기술한림원 용어위원장으로 과학기술용어 표준화를 주도했다.

1999년 대한의학회장 때는 TV를 모니터해 건강정보 중 17%가 되레 건강에 해롭다는 것을 알리기도 했다.

그의 제자인 서울대 김종재(金宗才) 교수는 “스승은 30년 동안 전국의 수많은 대학에서 강의를 했는데 흥미진진하면서도 정확하고 군더더기가 없어 명강의로 정평이 났다”면서 “이번 책도 쉽고 정확하고 군더더기가 없다”고 말했다. ‘복도에 휴지가 있으면 말없이 혼자 줍는, 솔선수범하는 분’이라는 것이 스승에 대한 그의 ‘코멘트’다.

그의 이런 품성은 사전에도 녹아 있다. 지 교수는 “이런 사전을 만들려면 최소 8명 정도가 모여 작업해야 하지만 한국에서는 대학에 적을 두고 다른 일을 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지난해 정년퇴직하면서 자유로운 내가 이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 교수는 의학계의 대가(大家)다. 1976년 미국 하버드대에서 전임강사로 있다가 귀국해 국내에 신경병리학 진단전자현미경학 소아병리학 기형학 등을 보급했으며 특히 태아 부검을 통해 임상 의사들에게 큰 도움을 줬다. 지금까지 무려 1000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이 가운데 국제과학논문인용색인(SCI) 논문만 250편이 넘는다. 의학계에 끼친 공로로 유한의학학술상, 동신스미스클라인학술상, 대한민국학술원상 등을 수상했다.

지 교수는 “병리학은 기초의학과 임상의학의 다리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의학의 여러 분야를 잘 알 수 있어 사전편찬 일을 하기가 비교적 수월했다”고 말했다.

“100년 동안 30판이 나오는 동안 수정과 보완을 거치며 명성을 얻은 미국의 롤랜드 사전처럼 일정 기간마다 사전을 보완해 나가겠습니다. 내가 이 일을 못하게 되면 제자들이 사전을 완성해 나가기를 바랍니다.”

이성주기자 stein33@donga.com

▼지제근 교수는

―1962년 서울대 의대 졸업

―1968년 서울대 의대 박사

―1970∼76년 미국 하버드대 의대 전임강사 및 부속병원 전임의

―1989∼93년 서울대 의학도서관장

―1996∼97년 대한병리학회장

―1997∼99년 대한의학유전학회장

―1999∼2003년 대한의학회장

―2001∼현재 한국과학기술한림원 부원장

―2003∼현재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

―2003∼현재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 인제대 의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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