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장례 총지휘하는 첫 여성상례사 유효순씨

  • 입력 2004년 5월 2일 18시 47분


여성 상례사 유효순씨가 지난달 29일 ‘1500번째 장례’를 치르기에 앞서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 삼성서울병원
여성 상례사 유효순씨가 지난달 29일 ‘1500번째 장례’를 치르기에 앞서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 삼성서울병원
“혼자 사는 노인이 숨진 지 며칠 뒤에 발견되는 경우가 늘고 있어요. 자녀들은 죄책감에 괴로워하고 얼굴을 들지 못합니다. 자신을 위해서라도 매일 부모에게 전화해야 합니다.”

국내 최초의 전문적인 여성상례사인 유효순(柳孝順·50·삼성서울병원 복지관운영팀)씨는 지난 3년 동안 이승과 저승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면서 이를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한다.

상례사는 장례식 절차 상담에서부터 스케줄 조정, 시신 안치, 발인 안내 등을 총괄하는 ‘장례의 지휘자’다. 물론 시신을 닦고(습), 수의를 입힌 뒤 끈으로 21번 묶는(염) 등의 염습도 빠질 수 없다. 유씨는 지난달 29일로 지금까지 정확하게 1500명을 저승으로 떠나보내는 역할을 맡았다.

유씨는 1978년 결혼해 8년 동안 시부모를 모시고 살다 분가한 뒤 놀이방 운영, 간호보조 업무 등을 해 오다 99년 삶의 방향을 틀었다. “둘째 딸의 대학입시 때 입시 요강을 살피다가 서울보건대에 국내 첫 장례지도학과가 생긴다는 소식에 눈이 확 뜨였습니다. 가톨릭 신자여서 처음부터 염습에 대해선 별 거부감이 없었고요.”

그는 2001년 초 졸업과 함께 지금의 병원에 입사했다. 유씨는 매달 2인1조로 40∼50구를 염습하고 있다.

“아직도 많은 남성은 제가 염습을 하려 하면 ‘황당하다’ ‘불쾌하다’는 식의 표정을 짓습니다. 그러나 일부는 일부러 여성에게 망자를 모셔 달라고 부탁하기도 해요.”

그는 “장례식장에서의 촌지문화는 추방됐고 상주 쪽에서 아무리 주려고 해도 받지 않는다”면서 “연봉이 많은 편인 데다 남편은 교사이고 세 딸이 모두 취직해서 경제적으로도 넉넉하다”고 소개했다.

“요즘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데도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노인들이 늘고 있어요. 대부분 평생 몸 바쳐 키운 자식이 멀어지는 것에 낙담한 사람들이죠. 자식들이 조금만 신경을 쓰면 막을 수 있는 일인데….”

이성주기자 stein3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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