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포커스]美 정치학회-행정학회 동시수상 전영한교수

  • 입력 2004년 5월 2일 18시 47분


미국 최고의 행정학 박사학위논문에 주어지는 화이트상과 NASPAA논문상을 동시에 수상한 전영한 교수. 그는 “공공조직이 목표를 분명하게 설정하는 것은 책임정치의 필수 요건”이라고 말했다. -김미옥기자
미국 최고의 행정학 박사학위논문에 주어지는 화이트상과 NASPAA논문상을 동시에 수상한 전영한 교수. 그는 “공공조직이 목표를 분명하게 설정하는 것은 책임정치의 필수 요건”이라고 말했다. -김미옥기자
미국 행정학계에 지난해 말 2관왕이 탄생했다. 전미정치학회(APSA)가 매년 행정학 분야 최우수 박사학위 논문에 주는 ‘화이트상’과 미국행정학과협회(NASPAA)가 역시 최우수 박사학위 논문에 주는 ‘NASPAA 논문상’을 동시에 수상하는 논문이 출현한 것.

논문의 제목은 ‘공공조직의 목표 모호성-그 여러 가지 차원과 원인 및 결과’. 수상자는 당시 조지아대 강사였던 한국인 전영한(全泳漢·38·중앙대 행정학과 조교수) 박사였다. 미국 행정학자 중에서도 두 상을 동시에 받은 전례는 지난 50년간 단 한 번밖에 없다.

“논문계획서 발표 때 교수들이 ‘너무 야심적인 것 아니냐’고 하더군요. 외국인이 수많은 자료를 뒤져야 하는 방대한 연구계획을 제출한 게 신기하게 보였던 모양입니다. ‘내가 가진 자원은 시간뿐’이라고 대답했지요.”

그의 연구는 제목 그대로 공공조직이 가진 목표의 모호성을 다루고 있다. 공공조직의 목표가 사기업에 비해 모호하다는 것은 행정학이 가진 가장 오랜 명제 중의 하나. 그러나 얼마나, 어떻게 모호한지에 대해선 객관적인 검증이 이뤄지지 않았다. 전 교수의 논문은 ‘모호성’의 객관적 측정 방법을 처음 개발했다는 데에서 공공조직관리 부문의 ‘획기적 진전(breakthrough)’으로 받아들여진다.

“읽어야 할 자료가 도서관 책장 하나를 가득 메울 정도였어요. 미 연방기관의 전략계획, 성과보고서, 연방 규정집, 인사기록 등등…. 매일 밤을 새웠지요.”

복사할 자료의 양도 엄청나 이용자가 없는 새벽 시간대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는 학과장이 ‘최근 복사용지와 토너 이용량이 폭증해 앞으로 한 장에 1센트씩 받겠다’는 공고를 내더라고요. 마침 저는 자료 복사작업을 끝낸 때였지요. 당연히 복사용품 사용량은 다시 줄었고, 학과장은 ‘참 잘한 조치였다’고 자랑하더군요.”

그렇게 그는 미 연방 115개 기관별로 ‘목표 모호성의 기준’을 측정했다. 기관에 따라선 수백 개에 이르기도 하는 목표와 성과지표를 따져 객관적 측정이 가능한 지표가 얼마나 되는지, 과정(예를 들어 몇 시간을 투입한다는 등)을 측정하는 지표인지 아니면 결과를 측정하는 지표인지 등을 꼼꼼히 분류했다. 연방 규정집을 다 뒤져 변수 하나, 연방 인사 데이터베이스를 뒤져 변수 두 개…. ‘시간이 자원’이라는 다짐만큼이나 힘겨운 작업이었다.

이렇게 탄생한 그의 논문은 공개되자마자 학계에 큰 화제를 몰고 왔다. 미국에서도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부터 ‘결과 중심적 정부를 만들고 명확하게 성과를 측정하자’는 목표가 지상 명제 중의 하나로 취급돼 왔지만 성과를 판단할 ‘지표와 수단’이 미흡했기 때문. 존스홉킨스대 출판부는 그의 논문을 2005년 출간할 계획이다. 사회과학 분야의 박사학위 논문이 일반 서적으로 출판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공공기관의 성과 측정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인 ‘책임정치’ 구현의 핵심입니다. 목표가 모호하면 책임을 물을 수 없고, 좋은 성과를 낸 것처럼 보이려는 말장난과 이미지 조작만 늘어납니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죠. 또 공공기관의 목표 모호성은 정치 과정과도 관련됩니다. 이해 갈등 세력의 타협으로 목표가 생기는데, 역설적이지만 타협하기 때문에 목표가 모호해지는 거죠.”

그가 귀국해 중앙대에 부임한 것은 이제 두 달 남짓. 처음엔 최소한 한두 해 이상 시간강사 생활을 할 각오였으나 두 상을 받은 덕에 예상보다 빨리 교수 자리를 얻었다. 대학원생 시절 만난 부인(33)은 올해 8월 조지아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을 예정. 7개월짜리 아들은 부인과 함께 있어 그는 여름까지는 어쩔 수 없는 ‘기러기 아빠’다.

“연구를 하면서, ‘편하게 논문을 쓰려는 것은 어느 나라나 똑같구나’ 하는 걸 느꼈습니다. 발로 뛰면 얼마든지 창조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데 미국 학자들도 책상머리에서만 쓰려는 경향이 있더군요.”

전 교수는 “땀과 창의성은 별개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내 논문이 받은 영예는 ‘땀으로 얻어낸 창의성’에 대한 평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전영한 교수는

△1985년 원주고 졸업

△1990년 서울대 심리학과 졸업

△1995년 서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2003년 미국 조지아대 행정학 박사

△2003년 조지아대 정치학과 강사

△2004년 중앙대 행정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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