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때 규장각 문서 부산피란 주도 백린씨

  • 입력 2004년 6월 16일 19시 09분


“한국을 떠난 지 3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규장각 사서로 근무하던 당시의 꿈을 꿉니다. 가장 사랑하는 규장각을 죽기 전에 다시 한 번 꼭 보고 싶어 한국을 찾았습니다.”

6·25전쟁 당시 규장각에 있던 승정원일기 등 국보급 자료들을 부산으로 옮기고, 이후 20여년간 미국 하버드대 옌칭도서관에서 한국 관련 자료 수집 및 연구에 힘쓴 백린 선생(82)이 16일 서울대 규장각을 찾았다.

그는 “한국을 떠날 때만 해도 귀한 자료들을 제대로 보관하지 못해 마음이 아팠었는데 지금 잘 보존돼 있는 것을 보니 마음이 놓인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1948년 서울대 도서관에서 부사서로 근무하면서 규장각과 인연을 맺은 백 선생은 한국 서지학계의 기초를 마련한 1세대 사서. 6·25전쟁이 발발하자 승정원일기(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와 비변사등록(국보 152호), 일성록(국보153호) 등을 부산으로 옮겼다.

“1·4후퇴 때 국군이 후퇴한다는 소식이 들려 규장각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미군 트럭 8대에 국보급 서적들을 실어 운반하는 책임을 맡게 됐죠. 혹 미군들이 손을 대 책이 상할까봐 제가 열쇠를 감춰 두고 있었습니다.”

돈이 없어 처음에는 제대로 포장도 하지 못한 채 도서를 차에 실어야 했다. 그는 “북한군이 1차 퇴각을 하면서 가져가려고 포장해 둔 절반을 제외한 나머지 도서는 그대로 뒹굴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백 선생은 “화물열차에 도서를 옮겨 싣는 순간 백낙준(白樂濬) 당시 문교부 장관이 제대로 포장이 되지 않은 책들을 보고 ‘너희들이 조선 500년 역사를 아느냐’며 호통을 치시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그는 “부산에 이 자료를 피란시켜 놓고 혹시라도 자료가 없어지지 않을까 걱정돼 신혼인데도 반년이 넘게 승정원일기 옆에서 잠을 잤다”고 말했다.

우여곡절 끝에 승정원일기는 국립박물관 짐이 보관돼 있던 부산 대청동 관재처 창고에, 일부 도서는 대한부인회 경남지부 창고, 경남도청 무기고 등에 나누어 보관됐다 무사히 서울로 돌아왔다.

이후 그는 계속 서울대 규장각에서 도서목록 현대화 작업을 하다 1973년 미국으로 건너가 옌칭도서관 한국목록 사서로 있다가 1992년 은퇴했다.

백 선생은 “조선왕조실록 편찬 원사료인 승정원일기는 물론 비변사등록, 일성록 등 규장각 도서는 단순한 도서가 아니라 한국 역사의 본산”이라며 “규장각은 단순히 귀중한 도서가 있는 공간이 아니라 역사의 본거지”라고 강조했다, 그는 “규장각이 앞으로 한국 서지학의 본산으로 거듭나길 바란다”며 “옛 서적들을 다시 보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전지원기자 podrag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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