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성남 정보산업고에 재학 중인 신청아(辛淸雅)양. 그의 특기는 만화 그리기다. 지난해 10월 ‘전주 컴퓨터게임 엑스포’ 캐릭터 공모전에서 대상을 차지했고 지난달 열린 ‘서울 캐릭터 페어’ 청소년부 공모전에서도 대상 없는 금상을 탔다. 지난해 말 여성부 주최 ‘디지털콘텐츠 대전’에서도 입선 경력을 갖고 있다. 지난해와 올해 그가 공모전에서 받은 상금만도 550만원에 이른다.
요즘은 자녀에게 특정한 소질이 있으면 부모가 적극 밀어주는 세상이라지만 신양은 그런 ‘호사’를 누려본 적도 없다.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만화가의 꿈을 이뤄가는 당찬 18세다. 공모전에서 상도 많이 받았지만 지금도 그는 부모님의 ‘눈총’을 피해 주로 학교에서 작품을 그린다.
지난해 전주 컴퓨터게임 엑스포 당시 아버지 신용명(辛容明)씨는 그가 며칠 밤을 꼬박 새우면서 준비한 작품 ‘크루세이더’ 원본을 출품 마감 하루 전에 찢어버렸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에게 화를 내기보다는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며 하루 만에 다시 작품을 완성했다. ‘아버지가 원망스럽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어릴 적부터 아버지 몰래 그리는 것이 습관이었는데 그때 잠시 방심한 것이 나의 실수”라며 웃는다.
그가 처음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7세 때. 초등학교 6학년, 만화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그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미치도록’ 만화를 그렸다. 수업시간에도 교과서 밑에 스케치북을 놓고 만화 그리기에 바빴다. 정식 만화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탓에 지난해부터 여러 공모전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기 전까지는 자신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조차 몰랐다.
컴퓨터게임 캐릭터대회에서 많은 상을 받았지만 정작 그가 그리고 싶어 하는 것은 수작업으로 하는 만화책. 캐릭터에 더 생동감을 불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5∼6년 뒤 자신의 이름을 내건 만화책 단행본을 출판한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그는 만화 그리는 것 이외에도 손재주가 많다. 캐릭터용 의상을 직접 만들어 ‘코스튬 플레이(만화나 게임의 주인공 의상, 헤어스타일 등을 모방하는 놀이)’ 행사에서 팔기도 한다. 자신이 디자인한 캐릭터로 만든 핀, 모자, 액세서리 등을 만들어 팔아 짭짤한 수입을 올리기도 한다.
아버지는 왜 딸의 만화 그리기를 반대할까. “예능 분야, 그것도 요즘 너도나도 뛰어드는 만화 분야에서 성공하기가 얼마나 어렵겠느냐”는 얘기다. 자신도 40대 초반에 회사를 그만두고 작가(시인)의 길에 들어서 고생한 경험이 있는지라 딸만은 평범한 길을 가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신씨는 “반대해도 좀처럼 뜻을 굽히지 않는 딸에게 나도 놀랄 때가 있다”면서 “이제는 나도 지쳐서 옛날처럼 ‘열심히’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양이 주로 그리는 분야는 요즘 각광받는 판타지 캐릭터. 장편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다수의 캐릭터가 등장하기 때문에 스토리 구성 능력이 중요하다. 공부에 별로 관심이 없는 그가 최근 백과사전 60권을 3주 만에 읽어치운 것도 스토리 배경 지식을 쌓기 위해서다. 그는 “솔직히 공부하라고 백과사전 읽으라고 했으면 5장도 못 읽었을 것”이라며 웃었다.
요즘 그는 대학입학 문제를 놓고 부모님을 설득 중이다. 부모는 “좋은 만화를 그리려면 폭넓은 지식을 쌓아야 한다”고 충고하지만 “소질 없는 공부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신양의 학교 성적은 중위권 정도. 그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선택한 것을 “내가 지금까지 내린 결정 중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는 “학교 선생님들이 중학생 후배들에게 나를 성공한 ‘역할 모델’로 소개할 때가 제일 뿌듯하다”면서 “열정과 노력만 있다면 대학에 안 가고도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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