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아테네 올림픽에 출전한 이라크 유일의 복싱 대표 나자 알리(24)는 경기가 끝난 뒤 미국인 코치 모리스 와킨스(47)를 얼싸안았다.
‘내 뒤에 이라크가 있다’는 구절이 적힌 유니폼을 입고 48kg급에 출전한 알리는 19일 아테네 페레스테리 복싱홀에서 열린 첫 경기에서 북한의 곽혁주(20)에게 판정승(21-7)을 거두고 16강전에 진출했다. 알리는 신장이 1m50으로 이번 대회 최단신. 하지만 날카로운 잽과 빠른 발을 이용해 1m62의 곽혁주를 효과적으로 공략해 낙승을 거뒀다.
그를 지도한 와킨스 코치도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남은 경기에서 이기든 지든 그는 올림픽의 승자”라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와킨스 코치는 지난해 가을 이라크 재건을 담당하는 연합군 임시행정처(CPA)의 제의를 받고 이라크 복싱팀 코치로 부임했다. 라이트급 프로복싱 선수 출신으로 미국에서 중고차 매매를 하던 와킨스 코치는 이라크에서 미군 병사들의 체력훈련을 담당해 왔다.
와킨스 코치는 21명의 이라크 복싱선수와 함께 폭격으로 허물어진 바그다드 체육관에서 훈련을 시작했다.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 치하에서 이라크 복싱은 푸대접을 받아 왔고 변변한 지원도 받지 못했다. 와킨스 코치 등 이라크 선수들은 올 1월에야 처음 국제경기에 나섰을 정도로 경험도 적었고 올림픽 출전권도 따내지 못했다. 그러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부터 와일드카드 한 장이 주어지는 행운을 잡았고, 와킨스 코치는 알리를 출전선수로 지명했다. 와킨스 코치는 미국 올림픽위원회를 통해 올해 초 6주간 미국 콜로라도 훈련센터에서 알리가 미국 선수들과 함께 훈련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알리는 경기가 끝난 뒤 “와킨스 코치가 나를 훌륭히 지도해 주었다. 와킨스 코치를 사랑한다”며 감사를 표시했다. 미국과 이라크의 분쟁을 뛰어넘은 스포츠맨십의 승리였다.
이원홍기자 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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