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조훈현 9단 바둑 40년 담은 ‘戰神~’ 출간

  • 입력 2004년 8월 20일 19시 17분


코멘트
1989년 9월 5일 싱가포르 웨스틴 스탬퍼드 호텔 특별대국실. 조훈현(曺薰鉉) 9단은 크게 심호흡을 했다. 초읽기 와중에도 그는 자신의 수읽기를 확인하고 자신 있게 돌을 쥐었다. 이어 ‘딱’소리와 함께 놓여진 흑 145. 이 수를 본 중국 녜웨이핑((섭,접)衛平) 9단의 얼굴은 붉게 물들고 있었다. 중앙 백돌의 명줄을 끊는 이 수에 응수가 없었다. 녜웨이핑 입에서 신음처럼 한 마디의 말이 흘러나왔다. “졌습니다.”

세계 바둑에서 한 수 아래로 취급받던 한국이 세계대회인 ‘잉창치배’에 참가한 유일한 한국 선수였던 조 9단의 맹활약 덕분에 우승컵을 안으며 단숨에 세계 정상으로 뛰어오른 순간이었다.

조 9단의 첫 전기 ‘전신(戰神) 조훈현, 나는 바둑을 상상한다’(청년사)가 최근 출간됐다. 조 9단의 외조카인 소설가 김종서씨가 30년간 그와 함께 하며 보고 들은 조 9단의 인생역정을 담았다. 조 9단이 삶의 결정적 고비마다 느꼈던 단상(斷想)을 직접 쓴 에세이 10여편도 들어 있다.

이 책에는 세계 최연소인 9세에 입단했던 일,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세고에 9단 문하에서 공부하던 시절, 잉창치배 우승으로 생애 절정을 구가하던 화려한 날들, 90년대 들어 이창호에게 국내 타이틀을 하나 둘씩 넘겨주고 2인자로 물러앉아 빠르고 감각적이던 기풍을 전투 위주로 바꿨던 사연, 이후 세계대회로 눈을 돌려 삼성화재배 2년 연속 우승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던 이야기 등 40년간의 바둑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이 책에서 후배들에게 ‘기(技)’를 넘어선 ‘끼’를 가지라고 주문한다.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는 이가 상쾌한 감흥을 갖도록 개성 넘치는 바둑을 두라는 의미다. 자신 역시 상대들이 “조 9단과 연출한 기보는 베토벤 교향곡 ‘운명’의 악보처럼 격정적이었다”고 기억하기를 희망한다는 것.

그는 40여년 간의 바둑 인생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많은 사람이 ‘당신은 바둑으로 이룰 것을 다 이룬 사람 아니냐’고 질문하면 이렇게 대답합니다. 바둑에 관한 한 나는 여전히 19로의 한 모퉁이에 서 있다고….”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