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데이트]설치미술展 여는 ‘사이보그’ 작가 이불

  • 입력 2004년 10월 1일 18시 22분


1일∼11월 12일 서울 피케이엠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갖는 설치작가 이불(40)이 신작 앞에 서 있다. ‘사이보그’라는 미래코드를 통해 진보를 향한 인간의 의지와 ‘몬스터’라는 반인반수의 생명체를 통해 삶이 짊어지고 가야 할 원초적 한계를 각각 표현한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는 두 개념이 합치된 신작을 내놓았다. 전영한기자
1일∼11월 12일 서울 피케이엠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갖는 설치작가 이불(40)이 신작 앞에 서 있다. ‘사이보그’라는 미래코드를 통해 진보를 향한 인간의 의지와 ‘몬스터’라는 반인반수의 생명체를 통해 삶이 짊어지고 가야 할 원초적 한계를 각각 표현한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는 두 개념이 합치된 신작을 내놓았다. 전영한기자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젊은 설치작가 이불(40)은 강한 사람일 줄 알았는데 약한 사람이었다. 전형적 외강내유 형이라고 할까.

대학(홍익대 조소과)을 졸업하자마자 연 개인전에서 썩어가는 생선을 내놓는가 하면, 쇠사슬을 온 몸에 걸었다가 끊어내는 나체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던 그녀는 ‘도발적인 전사’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막상 만나보니, 낯을 가리고 사람 앞에 나서기 주저하는 수줍은 사람이었다.

우리나라 작가로는 처음으로 1997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개인전을 가진 바 있는 그녀는 올 연말과 내년에 걸쳐 시드니 현대미술관과 도쿄 시라이시 갤러리에서의 개인전, 독일 마르타 헤르포드 미술관에서의 그룹전 등이 예정돼 있기도 하다.

그녀는 “작업은 내가 세상과 ‘접촉’하는 방식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일찍이 제도와 시스템이 주는 억압과 허위를 알아버린 원죄 탓에 누구보다도 신산한 길을 걸어 온 그녀가 ‘저항’이라는 단어대신 ‘접촉’이라는 단어를 쓰기까지에는 무려 40년의 세월이 필요한 듯 보였다.

접촉은 사실, 작가의 삶과 예술을 일관되게 꿰뚫고 있는 화두다. 접촉에서 확장되는 개념인 작용-반작용을 이미지화한 것이 바로 ‘사이보그’와 ‘몬스터’ 시리즈였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남과 다르게 생각하는가, 제도란 무엇인가,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역사와 문명은 누가 만들고 어떻게 이뤄지는가. 이불의 고민은 이 지점에서 시작되었고 결국 그녀는 자신에게 익숙한 ‘조형언어’로 이에 대한 의문과 답을 형상화했다.

“역사란 한계를 깨닫는 것과 이를 초월하려는 의지의 구현”이라고 말하는 작가는 사이보그라는 미래코드를 통해 진보를 향한 인간의 의지를 표현했고, 몬스터라는 반인반수(半人半獸)의 생명체를 통해 인간과 삶이 짊어지고 가야 할 원초적 한계를 보여줬다.

1일∼11월 12일 서울 종로구 화동 피케이엠 갤러리(02-734-9469)에서 모처럼 갖는 국내 개인전에서 그녀는 이 사이보그와 몬스터가 유기적 단계로 합치된 모습들을 드러낸다. 세상이란, 역사란, 분리된 개념끼리 충돌하거나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 하나라는 것을 시도해 본 작업이라고 한다. 작가의 경험과 사고의 폭과 깊이가 그만큼 넓고 깊어졌음을 의미한다.

이번 전시에는 실크와 자개를 이용한 평면, 크리스털과 구슬을 이용한 조각 등 신작 20여점이 나온다. 패널 위에 자개로 몬스터 실루엣을 만든 평면작품과, 와이어 크리스털 유리구슬 등을 사용한 조각 작품들은 모두 빛을 받아 반짝이는 현란한 아름다움이 특징이다.

과거 퍼포먼스를 통해 ‘여성’을 억압당하는 존재로 표현한 이력과 장식적인 재료들로 아름다움을 표현한 이번 작품들은 언뜻 연결이 안 된다. 그녀는 이에 대해 “나를 페미니스티니, 여성적이니 하는 그 모든 개념화를 거부한다”고 말했다. “그저 그 시절, 나에게 가장 잘 맞는 것들을 고른 것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폴리우레탄이나 구슬, 자개 같은 것들은 남들이 쓰지 않는 재료였기에 재료가 주는 선입견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점이 매력이다.”

그녀는 또 가족에게 필요한 에너지를 나눠주지 못해 늘 죄책감에 시달린다며 “작가란 갈수록 이기적이 될 수밖에 없는 존재여서 괴롭다”고도 했다. 그녀는 오로지, 작품만 생각하고 작품 앞에서만 솔직하려 했다.

“편한 길이 안 보이는 것은 아닌데, 그 길로 가고 싶지는 않다”는 작가의 단호함은 다름 아닌, 자기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呪文)이었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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