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단 설 때보다 즐거워”…교수서 택시기사 변신 이치수씨

  • 입력 2004년 10월 19일 18시 48분


이치수씨는 택시운전사를 해보니 서민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실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영대기자
이치수씨는 택시운전사를 해보니 서민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실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영대기자
택시운전을 시작한 지 한 달째인 초보 택시운전사 이치수(李治洙·48)씨는 10여년간 대학에서 행정학을 가르치는 교수 생활을 했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벤처기업의 고문으로 활동했던 전형적인 화이트칼라 출신이다. 그런 그가 택시, 그것도 힘들다는 회사택시의 운전대를 잡은 까닭은….

“지금까지는 머리와 입만 가지고 살아왔죠. 머리가 아닌 몸을 움직여 사람들의 삶 속으로 뛰어들고 싶었습니다. 승객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들의 애환을 직접 보고 듣는 일이 즐겁습니다.”

그는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한 관심이 크다. 사이버 공간에서 인터넷 카페 ‘나라사랑모임’을 이끌어 왔으며, 택시운전사를 시작한 뒤로는 ‘택시운전사 이 박사의 세상보기’라는 별도의 인터넷 카페를 개설해 자신의 경험을 네티즌들과 나누고 있다.

요즘은 야간근무조라 오후 5시 반에 일을 시작해 다음날 새벽 5시 반까지 꼬박 밤을 새우는 고생을 ‘사서’ 하고 있지만 보람도 적지 않다. 하루 평균 30∼40명에 이르는 각계각층의 승객들과 대화하는 게 최고의 보람이다. 정치 경제 사회 등 여러 영역을 넘나들며 얘기를 주고받는데 대화가 흥미로워서 목적지에 도착한 뒤 미터기를 꺼놓고 1시간동안 대화한 적도 있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사회복지학을 강의하는 대학교수를 태웠는데 서울 S동에서 본 판잣집 얘기를 하자 그 교수는 ‘신림동 난곡이 개발에 들어가 서울에는 더 이상 그런 지역이 없는 줄 알았다’며 놀라더라. 나도 그렇지만 그 교수도 강의실 공부만으로는 역시 한계가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택시는 서민경제의 바로미터’라는 게 이씨의 체험론이다. 경제가 어려워지자 택시 타던 사람이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면서 수입이 많이 줄었으며, 택시 승객들 중에 살기가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경우가 많다고 그는 강조했다.

“좋은 정치가 별 거 있나요. 국민을 잘 먹고 잘 살게 하고 마음 편하게 해주는 것 아니겠어요.”

성동기기자 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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