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포커스]윤순영 이사장, 겨울진객 재두루미 사랑 13년

  • 입력 2004년 11월 9일 19시 12분


한 무리의 재두루미가 김포 홍도평야에 내려앉은 장관을 찍은 자신의 작품사진을 배경으로 흐뭇하게 웃는 윤순영 이사장. 열심히 먹이를 주고 정성으로 보살핀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변영욱기자
한 무리의 재두루미가 김포 홍도평야에 내려앉은 장관을 찍은 자신의 작품사진을 배경으로 흐뭇하게 웃는 윤순영 이사장. 열심히 먹이를 주고 정성으로 보살핀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변영욱기자
《가을 추수가 끝나 을씨년스럽기까지 한 경기 김포의 홍도평야 들녘. 망원렌즈가 달린 특수카메라를 들고 수시로 나타나 유심히 주위를 살피는 검은 옷의 남자는? 13년째 이곳에서 천연기념물 제203호 재두루미를 지켜온 윤순영(尹淳英·50) 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이다. “뭣 때문에 자꾸 들판에 나가느냐”는 지인들의 핀잔에 “궁금하니까”라고 천연덕스럽게 답하는 그는 아침에 눈뜨기가 무섭게 들에 나와 재두루미를 관찰하다가 재두루미가 떠나면 들어오고, 해지기 전 다시 들판을 찾는 일과를 매일 반복하고 있다. 한국사진작가협회 회원이기도 한 그는 재두루미의 개체 수 파악도 하고 작품도 찍기 위해 하루 평균 3통의 필름을 쓸 정도로 이 ‘일’에 빠져 있다. 》

“오늘 아침 6∼7시경엔 재두루미들이 제법 보였는데 방해꾼이 있어서 다른 데로 이동했습니다. 아무도 방해하지 않으면 하루 종일 이곳에서 머물 텐데….”

그 말을 듣고 주위를 둘러보니, 지구상에 4000마리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는 재두루미들이 이곳을 찾는 게 기적이다 싶을 정도로 방해꾼이 널려 있다.

한쪽 끝에는 고층 아파트 숲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고, 반대편 강 쪽으로는 김포 우회도로공사가 소음과 먼지를 내며 한창이다.

시베리아에서 번식하는 재두루미는 한국과 일본 등에서 겨울을 나는 철새. 해마다 9월말 무렵 장장 2000km에 이르는 남하를 시작하는 재두루미는 김포 등 한강 하구, 멀리 일본 남부의 이즈미(出水)시에서 겨울을 나고 봄에 북상한다. 1970년대만 해도 김포 일대엔 2000여 마리가 꾸준히 찾아왔으나 지형의 변화를 초래하는 골재 채취, 농지 매립, 그리고 공장과 아파트 등의 영향으로 80년대 들어 거의 관찰되지 않다시피 했다.

사람이 100m 앞으로만 다가와도 눈치 채고 날아가 버린다는 재두루미가 도시와 맞붙은 이 벌판을 다시 찾아와 매년 대여섯 달씩 머무르게 된 데에는 그의 노력이 큰 역할을 했다. 직장에 다니며 취미생활로 자연의 모습을 사진에 담다가 1992년 11월 우연히 이곳 홍도평야에서 재두루미 7마리를 목격한 게 일의 시작이었다. 그 뒤 그는 직장까지 그만두고 본격적인 재두루미 지키기에 나섰다. 재두루미를 보기 위해 매년 60만명의 관광객이 찾아온다는 일본의 소도시 이즈미처럼 김포를 세계적인 두루미의 고장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는 해마다 가을이면 방앗간에 부탁하기도 하고 사재를 털기도 해 옥수수 밀 등 곡물을 비축해뒀다가 눈 내린 겨울 들판에 수백kg씩 쏟아 붓는다. 홍도평야에 가면 천지가 눈에 덮여도 먹을 게 있다는 것을 재두루미들이 기억하게 되면서 해마다 월동 차 이곳을 찾는 개체수가 증가했다. 92년 7마리가 94년 15마리로 2배가 됐고, 2000년 이후로는 70∼80마리의 재두루미가 꾸준히 날아들고 있다.

사람의 접근을 막는 것이 문제였다. 재두루미는 인기척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인근 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아침 운동 삼아 논길을 뛰어가면 다가가 정중하게 인사하고 철새도래지임을 알린다. 요즘은 환경에 대한 인식이 과거와는 달라져 대부분의 주민은 그의 당부에 협조적이다. 때로 “그까짓 새가 뭐가 중요하냐”고 따지는 사람은 “두루미는 생각할 줄 모르지만 사람은 생각을 할 수 있으니 우리가 배려해줘야 한다”는 그의 ‘철학 강의’를 들어야 한다.

요즘 그의 마음은 편치 못하다. 꾸준히 증가하던 재두루미 개체수가 올해 들어 감소한 탓이다. 아직 겨울이 남았으므로 뒤늦게 더 올 수도 있지만 예년 이맘 때 70∼80마리였던 개체수가 올해는 30∼40마리에 불과하다. 김포 우회도로공사와 골재 채취, 농지 매립 등이 악영향을 미쳤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국제보호조류가 도심 가까이 날아오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습니다. 천연기념물 재두루미가 머물고 잠자는 지역을 특별보전구역으로 지정해 잘 관리한다면 이즈미 못지않은 관광자원이 될 수도 있습니다.”

● 윤순영씨는…

△1954년 경기 김포 출생 △1973년 김포고 졸업 △1988년 한국사진작가 협회 회원 △1992년 김포 홍도평야에서 천연기념물 제203호 재두루미 7마리 목격한 뒤 보호활동 시작 △2000년 경기도 사진대전 초대작가 △현재‘맑은김포21실천협의회’ 운영위원장

성동기기자 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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