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기 이탈리아 아시시의 성인(聖人) 프란체스코의 일생을 일인칭으로 서술한 이 책의 첫 장에 장 주교는 ‘참다운 방지거 삼회원으로 사신 부모님 영전에 바칩니다’라고 썼다. 장 주교의 부친은 제2공화국 수반이었던 장면(張勉·1899∼1966) 전 총리.
교구 일로 매일 강원도 일대 성당을 순회하느라 바쁜 장 주교와 10일 전화인터뷰를 했다. 장 주교는 프란체스코 성인의 청빈한 삶과 부모에 대한 아들의 애틋한 마음을 잔잔히 풀어놓았다.
“가톨릭 신자이셨던 아버님은 1920년대 미국 유학 때 방지거(方濟角·프란체스코의 중국식 발음) 삼회원(재속·在俗 회원)으로 서원하셨고, 어머니도 1937년 성탄절에 서울 백동(현 혜화동)성당에서 프란체스코 재속 회원으로 서원하셨습니다. 두 분 모두 돌아가실 때까지 성인의 뜻을 지키며 청빈하게 사셨지요.”
몇 년 전 이탈리아어 원본으로 이 책을 접한 장 주교는 ‘가난의 삶’을 산 프란체스코 성인의 행적이 오늘 우리에게도 의미가 크다고 생각해 번역을 결심했다.
“지금 우리는 더 지니고 누리려고만 합니다. 저마다 권리와 이익 추구를 지상목적으로 살고 있지요. 그러나 진정한 삶의 기쁨은 나 자신을 남에게 내줄 때 얻을 수 있습니다. 더 주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이 생길 때 서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닐까요. 욕망을 삼갈 줄 아는 것이 진정한 가난이며 성인의 가르침입니다.”
장 주교는 번역자 후기에 ‘우리는 오늘 저마다 변화와 개혁을 외쳐대는 세상을 살고 있다. 다만 무작정 해내는 변혁이 곧 참 새로움은 아닌 터이다’라고 썼다.
“지금의 현실을 빗댄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새로운 것, 다른 것을 그 자체로 좋아하고 추종하는데 과연 그럴까요. 진정 새로워지려면 자기 본연이 무엇인지, 참모습이 무엇인지 되찾고, 그에 따라 철저하게 살아야 하지요.”
그럼 참모습은 과연 무엇일까.
“귀를 열고 자신을 말없이 응시하는, 홀로 서는 고독을 느껴야 합니다. 분망한 세상 속에서도 내면의 공간을 가질 줄 알아야 참모습이 조금씩 보이지 않을까요.”
인터뷰 내내 담담하게 성인의 정신을 말하던 장 주교는 그러나 ‘부모님은 어떤 분이셨느냐’는 질문에는 약간 들뜬 목소리로 답했다.
“7남매를 키우시면서 두 분이 단 한 번도 다투시거나 얼굴 붉히신 것을 본 적이 없어요. 저희에게도 매 한번 들지 않으셨죠. 굉장히 선하고 맑게 사시려고 애쓰셨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갈수록 마음속까지 똑같아지는 부부로 사셨어요.”
그러나 아버지 장 전 총리의 말년을 회상할 때는 목소리가 조금 흔들렸다.
“5·16쿠데타가 나고 군사재판에서 수모를 겪으셨어도 한 마디 저주나 원망의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자가용 대신 쓰셨던 지프를 팔아 병원비를 내고는 휘청거리는 몸으로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에 다니셨죠. 철저하게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장 주교는 “하느님은 당신이 그냥 당신이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것을 믿는다면, 이 사회에 버려질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말을 맺었다.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장익 주교는?▼
미국 메리놀대, 벨기에 루뱅가톨릭대,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신학대학원(석사), 로마 그레고리안대 철학대학원에서 공부했다. 1994년 주교 서품을 받으면서 춘천교구장에 취임했다.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직접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개인적 친분을 쌓기도 했다. 영어 독어 이탈리아어 중국어 등 외국어에 능통하며 문학과 미술 등 예술에도 조예가 깊다. 로마교황청에서 추기경을 선정할 때마다 후보 물망에 오르는 주교 가운데 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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