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는 지난해 말 서울 인사동 술집 ‘시인학교’에서 우연히 원로시인 신경림씨(70)를 만나 도자기에 새긴 시 전시를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냈다가 격려를 받은 뒤 올해 4월부터 시작해 7개월 동안 작업을 해왔다.
11일 신씨와 함께 경기 양평군 강상면 교평리에 있는 전원스튜디오 ‘아이’에 도착했을 때 김씨가 방금 전까지 도자기를 굽던 가마에는 열기가 가득했다. 신씨는 전시를 기다리는 21개의 도자기를 보고 “장관이네”라며 흐뭇해했다. 그는 자신의 시 ‘목계장터’가 새겨진 도자기 앞에서 시를 쓰게 된 동기를 밝히며 김지하 시인의 이야기부터 꺼냈다.
“작가회의의 전신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가 생긴 게 1974년이지요. 이듬해 김지하 시인이 출감했다가 한 달 만에 다시 투옥되었어요. 김 시인의 옥중수기가 동아일보에 연재되자 군부정권이 형 집행정지 조치를 취소해버린 거예요. 캄캄한 시절이었어요. 김 시인은 민청학련 사건으로 다시 사형을 기다리는 처지가 됐어요. 저는 그 무렵 대학에서 해직된 염무웅씨와 함께 원주에 사시는 김 시인의 부모님을 위로하러 갔다가 힘없이 돌아 나왔어요. 김 시인 면회도 안 되는 시절이었으니까요.”
‘아무도 더는/오르지 않는 저 빈 산//해와 바람이/부딪쳐 우는 외로운 벌거숭이 산/아아 빈 산/이제는 우리가 죽어/없어져도 상여로도 떠나지 못할 아득한 산/빈 산//너무 길어라/대낮 몸부림이 너무 고달파라/지금은 숨어/깊고 깊은 저 흙 속에 저 침묵한 산맥 속에/숨어 타는 숯이야 내일은 아무도/불꽃일 줄도 몰라라’.
김 시인의 시 ‘빈 산’의 일부다. 이 시 역시 이번에 도자기에 새겨졌다.
신씨는 “하염없이 길을 떠나 충북 충주시 엄정면 목계장터에 이르렀을 때 슬픔처럼 시가 솟아나더라”고 말했다. 푸른 강가에는 나룻배가 오가는데 봄볕마저 서러운 어느 하루였다.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목계장터’ 중에서) 신씨는 “갑자기 고은의 시 ‘친구들의 백발’이 생각난다”며 “고은 백낙청 박태순부터 세상 떠난 이문구, 젊었던 송기원까지 (작가회의 일을) 참 열심히 했지”라며 아득한 눈길을 보냈다. “그때(74년) 내가 마흔인데 지금 칠십이니…그래도 작가회의가 이제 서른 살이 됐으니…한창 때지.”
김씨는 “도자기 하나 구울 때 서른 시간씩 가마를 지폈다”며 “불 속에 달궈진 도자기들이 고난으로 달궈진 시들을 수천년 동안 안고 갔으면 좋겠다”고 소원했다.
양평=권기태기자 kkt@donga.com
▼민족문학작가회의 창립 30주년 다양한 행사▼
민족문학작가회의는 창립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다양한 행사들을 잇달아 갖는다.
13, 14일에는 강원 인제군 백담사 만해마을에서 전국문학인대회를 개최한다. 민족문학 세미나와 시 낭송, 통일 굿 등이 마련된다. 창립일인 18일에는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본행사를 갖고 창립연도인 1974년생 작가들이 선언문을 채택한다. 17∼23일에는 서울 종로구 인사동 덕원갤러리에서 도자기전 외에도 사진·자료전 ‘문학의 길, 역사의 길’, 시판화전 ‘21세기를 노래하는 새로운 목소리들’을 갖는다.
24일∼12월 8일 서울 중구 정동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전시실에서는 고 김남주 시인 10주기를 추모하는 ‘사랑과 전투의 시인 김남주전’이 마련된다. 12월 중에는 문인 애장품 바자, 친선 산행과 바둑대회가 잇따른다. 02-313-1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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