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들에게 한국어 수업을 하면서 안경을 썼다 벗었다 하다가 어디에다 벗어놨는지 몰라 쩔쩔매며 찾는 모습을 보이기 일쑤다. 밖에 나갔을 때는 불편이 더 크다. 한번은 전철을 타고 가다가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를 받았는데 찍힌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아 무시하고 그냥 갔다가 장소가 변경되어 있어 낭패를 당했다. 이런 일을 없게 하려고 안경을 끈에 매어 목에 걸고 다니다가 부주의로 안경이 망가지기도 했다.
엄살이 심한 탓인가. 이 정도를 가지고 몸의 수명이 다해가고 있다는 비장한 생각이 들다니…. 한편으로는 어머니를 비롯한 연세 많으신 분들에 대한 경외심이 저절로 생겼다. 나이 40이 되면 죽음의 길로 떠날 보따리를 챙기기 시작해야 한다는 대종경(大宗經·원불교 경전)의 말씀이 이제 현실이 되었다.
두 눈이 베풀어준 은혜를 잘 모르고 살았던 지난날을 생각해 보면 지금의 불편에 대해 할 말이 없다. 그동안 눈병 한 번 난 것 말고는 정말 충실히 일해 주었는데 한 번도 감사의 마음을 보낸 적이 없었구나…. 아직 멀리 있는 것은 이렇게 잘 보이니 그 아니 감사한가! 참회를 하고 나니, 이는 불편이 아닌 새로운 삶의 시작임이 느껴진다.
나이 들수록 멀리 있는 것은 잘 볼 수 있는데 가까운 것은 볼 수 없게 된 것, 즉 삶이 불편해지고 타력에 의지하게 되는 것은 진리를 깨닫게 하는 방편이고 은혜다.
나이를 먹을수록 상(相·흔적을 남기려는 생각)이 생기기 쉽다. 상이 생기면 자기 허물은 못 보거나 안 보려 한다. 대신 남의 허물은 잘 보고 트집 잡게 된다. 눈에 가까운 것은 잘 안 보이고 먼 것은 잘 보이는 것은, 바로 그렇게 되는 육신을 통해 마음을 잘 살피라는 경책(警策·정신을 차리도록 꾸짖음)인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안경을 집어 들면서 내 허물을 잘 보고 있는지 살핀다. 불편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더욱 정신 차려 공부하게 하는 깊은 은혜가 아닐 수 없다.
교무·원불교 서울 외국인센터 소장 최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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