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데이트]이세돌 9단 “이창호벽 넘고싶다”

  • 입력 2005년 1월 20일 18시 07분


이세돌 9단의 얼굴은 표범을 닮았다. 그의 바둑도 표범처럼 재빠르고 민첩하며 자유분방하다. 안철민 기자
이세돌 9단의 얼굴은 표범을 닮았다. 그의 바둑도 표범처럼 재빠르고 민첩하며 자유분방하다. 안철민 기자
이세돌 9단(22)을 보면 보헤미안이 떠오른다. 바둑계의 관습이나 금기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행동한다. 대개 승부에 지장이 있다며 금기시되는 술과 담배도 거리낌 없이 한다. 마음에 안 드는 대국에 불쑥 불참하거나 지상파 TV의 오락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참가하기도 한다. 솔직한 발언으로 구설수에 오를 때도 있다.

그의 바둑 스타일도 그렇다.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강수를 터뜨리거나 반상을 종횡무진 휘젓는다.

조훈현 이창호 9단이 자기 관리가 철저한 모범생 스타일이라면 그는 과거 서봉수 9단 같은 아웃사이더의 면모를 갖고 있다.

그는 지난해 연말과 새해 초 세계대회인 ‘삼성화재배’와 ‘도요타덴소(豊田電裝)배’를 잇따라 석권했다. 두 대회의 우승 상금과 부상을 합치면 5억원에 이른다. 여기에 국내 대회인 ‘한국바둑리그’ 우승과 MVP를 차지해 4000여만 원을 더 챙겼다.

―도요타덴소배 결승전이 끝난 뒤 ‘(우승을 다툰) 중국의 창하오(常昊) 9단이 나보다 더 세다’고 말했는데….

“마지막 대국의 중반까지 내게는 절망적이었다. 창 9단은 침착하고 대세 균형을 맞추는 감각이 탁월했다. 그러나 그는 우승을 눈앞에 둔 순간, 마음이 떨려 어이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바둑 실력만 보면 창 9단도 우승할 수 있다. 승부에는 운도 따라야 한다.”

―세계대회에서 여섯 번 결승에 올라 다섯 번 우승했다. 바둑 기사로서 뭔가 이룬 게 아닌가.

“어릴 때는 세계대회 우승을 한번만 해도 좋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여전히 미흡하다. 아직 이창호 9단의 벽을 넘지 못했다. 지난해 왕위전 도전기에서도 이길 자신이 있었는데 2승 3패로 졌다. 이 9단이 최근 부진하다곤 하지만 여전히 세계 최강이다. 나는 너무 어렵게 이기는데 그는 쉽게 두어 이긴다. 그게 부럽다.”

―2003년말부터 2004년 중반까지 세계 대회 1, 2회전에서 탈락하는 등 슬럼프에 빠졌는데 어떻게 극복했나.

“2003년 LG배와 후지쓰배를 우승한 뒤 마음이 풀어졌다. 그 때 후배인 최철한 9단이 국수전과 기성전에서 우승하는 것을 보고 마음의 끈을 조였다. 최 9단이 내 승부욕을 자극했다고 할까. 최 9단은 이창호 9단과는 또 다른 라이벌이다. 그의 흑번 바둑은 이창호 9단보다 더 세다. 결승전이나 도전기에서 진검승부를 해보고 싶다.”

―술과 관련된 일화도 많다.(그는 주량이 꽤 세다) 그러나 술이 장기적으로 바둑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한때 ‘먹고 죽자’는 식으로 술을 먹기도 했다. 어릴 때 치기였지만 지금은 다르다. 큰 대국 전날 잠이 안 오면 맥주 3캔을 먹기도 한다. 아직 술이 부담스럽진 않다. 문제가 된다고 느끼면 끊을 것이다.”

―도요타덴소배 우승 후 ‘안티 팬’에 대해 ‘앞으로 많이 사랑해달라’고 말했는데….

“그동안 중요 대국을 앞두고 자신감을 지나치게 드러낸 게 건방진 행동으로 비친 것 같았다. 그렇다고 겸손한 체하기도 싫다. 성격을 바꾸긴 어렵겠지만 내 자신을 성숙하게 업그레이드하겠다는 뜻이었다.”

―올해 목표는….

“연간 승률 8할이다. 이창호 9단도 8할 승률을 기록한 것은 네 번 밖에 없었다. 승부사는 꾸준히 이기는 게 중요하다. 어떤 타이틀을 따는가는 이후의 문제다. 바둑 외의 목표라면 여자 친구를 사귀고 싶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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