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퇴계의 성학십도 현대인의 길잡이”

  • 입력 2005년 1월 26일 19시 57분


“‘큰 배움터’인 대학에서도 세태에 밀려 인문학이 ‘찬밥’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하지만 인문학적 소양을 탄탄히 쌓은 대학생이 결국 기업에서도 인재로 평가받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대구와 경북지역은 퇴계 이황(退溪 李滉·1501∼1570) 선생을 중심으로 한 유학의 전통이 다른 지역보다 뿌리가 깊은 편이다. 하지만 퇴계 선생의 거대한 사상이 간결하게 압축된 ‘성학십도(聖學十圖)’의 내용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성학십도는 퇴계 선생이 68세 때 선조를 위해 지은 책. 당시 17세이던 선조를 위해 몸가짐부터 정치에 이르기까지 임금으로서 갖춰야 할 태도 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림을 곁들여 만들었다.

영남대 철학과 최재목(崔在穆·44) 교수가 26일 펴낸 ‘쉽게 읽는 퇴계의 성학십도’는 퇴계가 임금을 생각했던 바로 그 상황을 현대적으로 이어 받은 고민 끝에 나왔다.

“대학원생들조차 성학십도를 매우 어렵게 느끼더군요. 그렇다면 일반인이 혼자 읽으며 가까이하기는 더욱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유학, 그 중에서도 퇴계 사상이 종합적으로 담겨있는 성학십도를 지금 시대에 맞게 해석할 수는 없을까 고민했습니다.”

퇴계는 어린 임금을 위해 성학십도를 지었지만 현대적 시각에서 볼 때 이 책은 성인(聖人), 즉 ‘이상적인 인간’을 바라는 사람은 누구나 귀를 기울일 만하다는 게 최 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퇴계 사상의 핵심은 바로 지금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마음을 어디에 두고 어디로 나아가도록 해야 하는가를 깊이 사색한 것”이라며 “이는 구시대의 유물이 아니라 하루하루의 삶을 꾸려가는 일상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20여 년 동안 퇴계의 유학인 성리학(性理學)과는 다른 양명학(陽明學) 분야를 탐구해왔다. 2003년 펴낸 ‘내 마음이 등불이다’는 왕양명의 사상을 정리한 책으로 학계에서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그는 또 지난해에는 중국의 노장사상 전문가인 진고응(陣鼓應)의 저서인 ‘노자’를 번역해 내놨고 ‘크로스 오버 인문학’, ‘유교와 현대의 대화’, ‘토론을 위한 동양의 지혜’ 등도 펴냈다.

지난해 영국 국제인명센터의 ‘21세기를 대표하는 탁월한 지식인 2000’에 철학교수로는 드물게 선정된 그는 “인문학은 위기일 때 오히려 더 꽃을 피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학생들이 ‘인문학은 비인기학과’라며 외면하는 풍토가 있으나 사람(人)의 ‘사람다운 무늬(文)’를 탐구하는 인문학의 생명력은 예나 지금이나 바뀔 수 없다”며 “대학생들이 인문학에 대한 관심을 높일 수 있도록 더 고민을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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