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데이트]佛신부가 동쪽으로 온 까닭은…

  • 입력 2005년 3월 3일 18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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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가톨릭 사제로서 불교를 끌어안고 사는 사람입니다.”

이번 학기부터 서강대 종교학과에서 한국불교를 가르치는 프랑스인 예수회 신부 서명원(徐明原·52·베르나르 서네칼·사진) 교수. 외국인 스님은 많지만 국내 대학의 한국불교 전공 외국인 교수는 그가 처음이다. ‘로만 칼라 위에 승복을 입은’ 그를 2일 서강대에서 만났다.

“의사 집안에서 태어나 보르도대 의대에서 6년을 공부했지만 나의 길인지 항상 궁금했어요. 해부실에서 350구의 시체를 해부하면서 ‘병 고치는 법은 알겠지만 생로병사의 이치에 대한 가르침은 배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더 이상 나 자신을 속일 수는 없었지요. 1979년 자퇴 후 곧바로 예수회에 들어가 수사 생활을 시작했어요. 이후 한번도 후회한 적은 없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행복해하던 그에게 1984년 예수회 한국지구에서 “한국에 올 생각이 없느냐”는 요청이 왔다. 그는 지도책에서 한국을 찾아보고 마음이 끌렸다. 중국 일본 소련 같은 강대국 사이에 낀 한국은 정말 생명력이 있는, 하나의 소우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해 여름 한국에 와서 3년간 한국어를 배웠다. 그는 이어 진정한 한국 문화를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서울 근교 사찰에서 스님들과 대화를 나누다 불교를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이 어렴풋이 들기 시작했다.

“1990년 사제품을 받기 위해 프랑스로 돌아가서는 파리7대학 동양학과에서 한국문화를 더 공부했어요. 석사 논문으로 뭘 쓸까 한국무속 전문 교수에게 물어봤더니 한국불교를 말씀하시더군요. 제 예감을 확인했지요.”

석사 논문은 송광사 선승(禪僧)이던 구산(九山) 스님에 대해 썼다. 그리고 구산 스님의 제자였던 로버트 버스웰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교수의 송광사 수행기 ‘Zen Monastic Experience(파란 눈 스님의 한국 선 수행기)’를 읽고 한국 불교의 ‘돈점(頓漸) 논쟁’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 논쟁은 순식간에 깨닫느냐, 아니면 천천히 깨닫느냐에 관한 논쟁이다.

“한국 불교의 중요한 문제인 돈점 논쟁을 알려면 성철(性徹) 스님을 알아야 했습니다. 그때부터 성철 스님은 제 박사 논문의 주제이자 화두가 됐어요.”

성철 스님 법어집과 10년에 걸친 씨름 끝에 지난해 ‘성철 스님의 생애와 전서(全書)’라는 논문으로 파리7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성철 스님 법어집 중 ‘선문정로평석(禪門正路評釋)’과 ‘육조단경(六祖壇經)’, ‘백일법문(百日法門)’ 등 주요 저작은 누더기가 될 때까지 수십 번 읽었다.

“성철 스님은 진리를 향해 산 뛰어난 수행자입니다. 그를 비판하는 학자들도 있지만 수행자로서 그가 체득한 사상체계의 구성원리를 맛본다면 훌륭한 분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어요.”

성철 스님을 존경하지만 그의 마음은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하다.

“예수님께서는 완전히 깨어서 사신 분입니다. 비록 3년 남짓 활동을 하셨음에도 역사에 남으신 것은 그분이 온전히 남을 위해 사셨기 때문입니다. 깨어 있다면 사심과 이기심을 벗어나 남을 위해 살 수 있습니다.”

서 교수는 한국이야말로 기독교와 불교가 만날 수 있는 땅이라고 역설했다.

“인구의 4분의 1이 각각 기독교인과 불교인인 한국은 두 종교 사이의 만남을 통해 인류 전체에 이바지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입니다. 그러려면 서로를 전문적으로 연구해야지요. 당연히 신학박사 스님도 나와야 합니다. 서로를 깊이 알면 존경하게 되고 배우고 나누면서 풍요롭게 되지요.”

그는 인터뷰를 하는 동안 ‘기가 막힌’ 같은 구어체 말뿐 아니라 ‘두문불출(杜門不出)’ 같은 사자성어도 유창하게 구사했다.

“1986년 당시 서강대 총장이셨던 서인석 신부가 지어 준 제 한국 이름은 ‘천천히 빛을 드러내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아직 (빛이 나기에는) 멀었지만요.”

기독교와 불교가 함께 걸어갈 수 있는 통로를 연구하겠다는 파란 눈의 신부는 부처님 같은 미소를 지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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