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웅(金文雄·62) 전 비상기획위원회 행정실장이 우리나라에 근대적 훈장제도가 도입된 1900년부터 100여 년간 훈장증의 변천사를 연구한 결과물을 최근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모임’에서 발표했다.
그는 이 모임에서 을사오적 중 한 명이었던 권중현(權重顯)이 1908년 일본 메이지(明治) 왕에게서 받은 일본 최고훈장 욱일대수장(旭日大綬章)의 훈장증을 공개했다. 일본 왕실 무늬인 국화꽃이 훈장증의 테두리를 둘러싸고 빨간색 훈장의 모양이 새겨진 이 훈장증에는 메이지 왕의 이름인 ‘睦仁(목인·무쓰히토)’이 친필로 서명돼 있다.
지난해 국가기록원이 일제강점기에 훈장을 받은 친일파 1500여 명의 명단이 들어 있는 일제의 서훈 공문서를 일본 도쿄(東京) 국립공문서관에서 발견했지만 일제가 수여한 훈장증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10년 순종황제가 친필로 이척(李拓)이라 서명한 대한제국 2등훈장인 팔괘장(八卦章)도 공개됐다. 이 훈장증은 국화꽃 무늬를 조선 왕실 무늬인 자두 꽃무늬로 대신한 정도의 차이를 빼고는 디자인이 일본 훈장증과 거의 유사하다.
김 전 실장은 “고종과 순종 때 4등급의 훈장은 모두 170여 명에게 수여됐는데 한국인보다 오히려 일본인이 더 많이 받았다”며 “나라 잃은 설움이 훈장의 역사에도 반영돼 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훈장의 역사는 1949년에 시작됐다. 훈장증에 찍히는 국새와 대통령 직인이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때 한문에서 한글로 바뀌었고,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때 국새의 크기가 더 커졌다.
또 이승만(李承晩)과 윤보선(尹潽善) 대통령 때만 해도 훈장증에는 대통령이라는 직함만 나왔으나 박 대통령이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으로 대통령직무대행을 할 때부터 대통령의 이름이 등장하기 시작해 점점 더 커졌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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