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백혈병 환자들에게 나눠 줄 건강한 혈소판을 만들겠다며 매일 새벽 20km를 뛰어서 출근하는 사람이 있다. 인천시교육청 혁신복지담당관실에 근무하는 임종근(林鍾根·47) 씨. 그의 헌혈 ‘기록’은 27년 동안 무려 254회에 이른다.
임 씨는 처음 헌혈을 결심한 날을 아직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1978년 3월. 어려운 집안 형편 탓에 초등학교만 마친 후 전기용접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남들만큼 살지 못한다는 서글픔으로 갈등이 많았던 임 씨가 마음을 기대 찾아간 곳은 집 근처의 성당이었다.
“수녀님 한 분이 제게 ‘몸 건강하니 복 많은 사람’이라는 말씀을 해 주셨어요. 성당을 나서는데 한쪽 팔과 다리가 불편한 아주머니가 리어카를 끌며 배추장사를 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는 행복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천주교 신자가 되면서 평생 실천할 한 가지 의무로 임 씨는 “헌혈을 많이 해 아픈 사람들을 돕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스스로 한 약속을 지켰을 뿐이니 누구에게 칭찬받을 얘깃거리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스물한 살 자신과의 약속을 꾸준히 지켜 온 임 씨는 1994년부터는 한 달에 두 번씩 혈소판 헌혈을 하고 있다. 매일 아침 출근길의 장거리 달리기를 시작한 것도 백혈병 환자들에게 자신의 건강한 혈소판이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안 뒤부터다. 임 씨는 하루 1500원씩 아낀 교통비를 따로 모아 어려운 이웃 노인들에게 매달 쌀 한 가마니를 마련해 드리고 있다.
김근태(金槿泰) 보건복지부 장관은 11일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열리는 ‘헌혈자 대축제’에서 임 씨를 비롯한 16명의 헌혈봉사자를 표창한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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