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의 제자들, 김동리 선생 타계 10주기 추모의 밤-헌정식

  • 입력 2005년 6월 18일 04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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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리 선생 타계 10주기를 맞아 추모 문집 헌정식 및 추모 음악의 밤이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 대강당에서 열렸다. 소설가 박경리 씨가 김동리 선생에 대한 추억을 말하고 있다. 전영한 기자
김동리 선생 타계 10주기를 맞아 추모 문집 헌정식 및 추모 음악의 밤이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 대강당에서 열렸다. 소설가 박경리 씨가 김동리 선생에 대한 추억을 말하고 있다. 전영한 기자
“김동리 선생님께서 먹을 갈아 붓글씨로 ‘金芝娟(김지연)’이라 쓰고 낙관을 꽉 찍어 건네주셨어요. 선생님께는 죄송하지만 저는 그때부터 마지못해 그 이름을 쓰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이제 40년 넘게 쓰다 보니 내 생명의 한 부분이 되고 말았어요.”(소설가 김지연·본명 김명자)

‘무녀도’ ‘사반의 십자가’ 등의 작품으로 우리 문학사를 빛낸 김동리 선생이 타계한 지 17일로 10년이 됐다. 그를 추모하는 제자들의 글을 모은 문집 ‘영원으로 가는 나귀’ 헌정식 및 추모 음악의 밤이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 대강당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는 김동리 선생이 서라벌예대와 중앙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있으면서 길러낸 제자들, 문예지 추천을 통해 데뷔시켜 준 제자들이 200명 이상 모였다. 김동리 선생의 부인 서영은 씨와 멀리 강원 원주시에서 찾아온 박경리 씨를 비롯해 김동리기념사업회 회장인 김주영 씨, 장윤익 윤병로 김남조 이근배 한승원 이동하 백시종 황충상 이경자 김종철 씨 등 백발의 문단 중진들이 가득 모였다.

이들은 이날 김동리 선생이 어려운 제자들에게 글 쓸 수 있는 직장을 구해 준 일, 주례를 서 준 일, 필명을 지어 준 일, 제자들의 원고를 주제부터 맞춤법까지 하나하나 검토해 준 일 등을 회고하면서 큰 스승을 그리워했다. 서울 숭의여고와 문영여고 문예창작반 여학생 100여 명도 자리를 함께했다.

문학평론가 이어령 씨는 이날 “김동리 선생의 ‘무녀도’에서 모화가 죽고 나자 딸 낭이가 나귀를 타고 곳곳으로 돌아다니면서 무녀도를 그리듯 선생의 문학은 나귀처럼 지금도 어느 길에서인가 천천히 걷고 있다”며 “김동리 선생은 이제 재생한다”고 추모했다.

이어 열린 ‘김동리 추모 음악의 밤’은 김동리 선생의 서라벌예대 제자인 작사가 양인자 씨와 작곡가인 남편 김희갑, 가수 이동원, ‘코리아나’의 멤버였던 캐시 리, 성우 권희덕, 피아니스트 최세월 씨가 나와 김동리 선생의 시에 곡을 붙인 ‘무지개’ ‘동화’ ‘이렇게 나는 오늘도’ 등을 노래했다. 양 씨는 “사람을 너무 어려워해도 정이 가지 않는 법인데 어려워라 어려워라 바깥으로만 맴돌던 제자들을 선생님은 자식처럼 챙겨 뒤통수를 땅땅 때려 주시곤 했다”고 회고했다.

추모 행사를 후원한 동아일보사의 김학준 사장은 “큰 인물들이 돌아가시면 쉽게 잊혀지곤 하는 세태 속에서 이번 추모 행사가 우리의 지적 풍토에 청량제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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