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수상 이후 박찬욱 감독이 내놓는 첫 작품인 ‘친절한 금자씨’(28일 개봉)에서의 이영애는 과거의 그가 아니다. 산소같이 청정하고 가없이 착할 듯한 ‘장금이’는 더 이상 스크린에 담겨 있지 않았다.
18일 오후 서울 용산CGV 극장에서의 시사회가 끝난 뒤 만난 이영애는 ‘금자’에 푹 빠져 인터뷰 내내 ‘금자’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에는 관심 없어 했다.
“영화 속의 저를 연구하지 말고, 금자를 연구하셨으면 좋겠어요. 배우 이영애를 이야기하면 재미가 없지요.”
TV드라마 ‘대장금’으로 한국에 이어 대만과 홍콩에서 방영시간이면 도로가 한산해질 만큼의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장금이’ 이영애에게 금자는 큰 모험이자 도전이었다.
“(5월에) 홍콩에 갔을 때 그렇게 반응이 뜨거울지 몰랐어요. 순간 겁이 나더라고요. 이렇게 장금이를 좋아하는 홍콩 분들이 금자를 보고는 놀라지 않을까. 배우 이영애가 아니라 장금이 이영애를 좋아하는 거였을 테니까요.”
영화 속 금자는 한 남자에게 속아 유괴살인범이 돼 13년간 복역한 뒤 출소해 복수를 준비한다. 교도소 안에서는 ‘친절한’ 금자 씨로 통했지만 밖에서는 복수심으로 불탄다. 칼을 쥔 납치범의 손목을 사제 총으로 날려 버리고, 흑심을 품은 전도사가 전해 주는 두부를 땅에 내던지며 “너나 잘하세요”라고 쏘아 붙인다. 이영애 자신의 표현대로 “많이 망가졌다”.
“기존의 제 이미지만 좋아하셨던 분이라면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제가 배우로서 오랫동안 조금씩 노력했던 과정을 봐온 분이라면 저를 이해하고 감싸 안아 주실 거라고 생각해요. 고맙지요.”
‘친절한 금자씨’는 박 감독이 이영애에게 보내는 ‘연서(戀書)’와 같다. 이영애의, 이영애를 위한, 이영애에 의한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달수 오광록 등 쟁쟁한 조연이 나오지만 그들의 연기는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만큼 이영애 혼자 극 전체를 이끌어 간다.
“부담이 없었거나 고민을 전혀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에요. 그렇지만 부담 이전에 배우로서 장점이 될 수 있으니까 선택했어요. 좋은 감독 밑에서 여배우 혼자 다양하게 이끌어 갈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잖아요.”
박 감독은 이영애가 촬영장에서 언제나 “한 번 더”를 집요하게 요구하는 성실의 화신(化身)이었다고 귀띔했다.
“좀 과장된 이야기고요. 배우로서 해보지 않았던 역을 보여 줘야 했기 때문에 더 많이 시도하고 더 다양하게 가려고 했던 거예요.”
영화 속 금자의 다양한 모습모습마다 푹 빠졌던 탓일까. 너무 힘들었던 것일까. 영화 속 입양된 딸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엄마로서의 금자와 복수만을 생각하는 금자 사이에서 괴리를 느끼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금자의 모습이 더 다양하게 나누어져서 보는 분들이 혼란스러웠으면 좋겠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제 본래 성격이 금자의 모습 속에 들어있다고 관객들이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러나 금자에게서 실제 이영애의 모습이 문득문득 보인다고 여기는 것은 기자만은 아니었나 보다. 박 감독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영애의 이미지는 영화 속 교도소 안에서의 친절한 금자처럼 모두 연기일지도 모른다. 금자에게는 익숙한 이영애와 낯선 이영애가 공존한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 나가는 이영애의 뒷모습에 언뜻 낯선 금자가 비쳤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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