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명문 귀족 출신인 토크빌은 1831년 26세의 젊은 나이로 7개월간 미국을 방문한 뒤 귀족주의를 포기하고 민주주의가 시대적 대세임을 선언했다. 그는 프랑스 혁명을 진압한 비엔나 체제라는 복고주의가 팽배한 유럽에선 낯설게만 느껴지던 신대륙 미국의 민주주의의 힘이 ‘조건의 평등’에서 나온다는 점을 꿰뚫어 봤다. 귀족 출신의 젊은이답게 평등보다 자유를 고결한 가치로 봤던 그는 그러나 미국 방문 후엔 ‘자신의 눈에 인간 쇠퇴로 보이는 것이 신의 눈에는 발전으로 비친다’는 말로 평등을 더 강조하는 민주주의를 신의 의지로까지 격상시켰다.
이 때문에 토크빌은 미국에서 ‘프랑스적 규범(canon)과 미국적 규범 모두의 구성원임을 선언할 수 있는 유일한 프랑스인’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미국식 민주주의를 절대 선으로 믿는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애독서로 ‘미국의 민주주의’를 서슴없이 꼽을 정도다.
그러나 170년 전 토크빌의 사상이 오늘날 다시 르네상스를 맞고 있는 것은 그의 민주주의에 대한 찬사 때문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그의 경고에서 찾아야한다는 게 학자들의 지적이다. 토크빌은 민주주의의 원동력인 평등에 대한 열망이 무질서와 노예 상태를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민주주의의 위기’가 거론되는 미국과 ‘민주주의 이후의 새로운 질서’를 고민하고 있는 한국의 정치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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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훈(정치학) 숭실대 교수는 “토크빌은 민주주의가 ‘시기하는 감정이 충만한 정치체계’라는 점에서 지적으로 뛰어난 사람을 싫어하는 평등제일주의를 낳고 한편으론 개인주의와 결합해 독자적 판단능력이 없는 개인들의 고립을 심화시킴으로써 다수의 익명에 자신을 숨기는 방식으로 ‘수의 권위’에 대한 순종을 낳을 수 있음을 경고했다”고 말했다.
토크빌은 미국에서 위대한 정치가가 등장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그 같은 경고는 미국의 대통령선거에서 갈수록 비범함과 거리가 먼 인사들이 선출되는 문제점을 정확히 예측하고 있다. 또한 다수의 결정 앞에서는 누구나 입을 다물어야 하는 반(反)엘리트주의와 평등제일주의가 지배하는 한국정치의 현실에 대한 지적같이 들리기도 한다.
토크빌의 이런 사상은 내년에 탄생 200주년을 맞는 영국의 존 스튜어트 밀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토크빌이 폐결핵으로 갑자기 숨진 이후 ‘다수의 횡포’를 비판한 밀의 자유주의 사상으로 꽃피게 된다.
김비환(정치학) 성균관대 교수는 “귀족주의적 자유주의자였던 토크빌이 궁극적으로 옹호했던 것은 자유였지만 그는 미국을 통해 평등의 참된 가치를 수용했다”면서 “다수의 지배를 주장하는 민주주의가 도덕적, 문화적 획일주의와 ‘부드러운 전제정치(soft despotism)’를 낳을 수 있다는 토크빌의 경고는 오늘날 더 유효하다”고 말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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