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은행에 따르면 손 선생이 은행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40년 4월 1일. 일본 메이지(明治)대 법문학부를 졸업한 뒤 제일은행의 전신인 조선저축은행에 입사했다.
당시 선망의 대상이었던 은행에 입사하려면 까다로운 공채 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손 선생이 은행에 입사하는 데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예우한 조선육상연맹의 추천이 큰 힘이 됐다고 한다.
은행 업무는 만만치 않았다. 손 선생은 은행원의 필수품이던 주판을 다루는 데 서툴러 많은 고생을 한 것 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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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예금 권유기간에는 종전의 개인별 최고 유치실적보다 4배 정도 많은 실적을 올렸다. 조선저축은행은 물론 다른 은행에서도 화제가 됐을 정도였다.
그러나 은행원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입사한 지 4년 3개월 만인 1944년 7월 가정형편을 이유로 사직서를 내고 고향인 평북 신의주로 귀향한 것.
지금도 제일은행 사료실에는 손 선생이 입사할 때 제출한 입사원서, 인사기록 카드, 사직원 등 관련 기록이 보관돼 있다.
손 선생은 은행에 입사하기 4년 전인 1936년 독일 베를린 올림픽에 서 마라톤 금메달을 따내 일제강점기 민족의 한(恨)을 달랬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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