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든 감독은 대집단체조(매스게임)에 참가하는 평양에 사는 두 여학생의 연습과정과 하루하루의 생활을 밀착해 찍은 다큐멘터리 ‘어떤 나라(원제 A State of Mind)’와 1966년 런던 월드컵축구대회에서 8강 진출 신화를 이룬 북한 팀의 이야기를 담은 ‘천리마 축구단(원제 The Game of Their Lives)’의 국내 개봉(26일)을 앞두고 방한했다. 김일성종합대를 졸업한 주 기자는 2001년 탈북해 이듬해 대한민국으로 온 뒤 2003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국제부 기자로 일하고 있다.
주 기자는 “북한에도 밥을 남기는 아이들이 있다고 하면 여기선 놀라는 사람이 많다. 그만큼 북한에 대해 모른다. 평양 사람들의 집 안까지 카메라를 들이댄 것은 사실주의적이고 감동적이었다. 이건 평양에서 7년을 살았던 내가 보증하는 평가다”라고 입을 열었다.
주 기자는 분위기를 바꿔 “‘어떤 나라’를 과거 북한 집단체조에 직접 참여한 경험이 있는 탈북여성과 함께 보았다”며 “그 여성은 자기는 얻어맞으면서 집단체조 훈련을 받았는데 그런 장면이 안 나왔다며 섭섭해 하더라”고 뼈있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고든 감독은 “아마 엘리트급 선수들의 집단이라 내가 (구타를) 못 보았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어떤 나라’에 등장하는 13세 현순이와 11세 송연이는 여느 나라의 10대처럼 학교에 지각을 하고, 체조연습이 지겨워 ‘땡땡이’를 치고, 부모의 잔소리를 지겨워하고, 언니가 군대에 간 뒤 “내 방이 생겨서 무척 좋다”며 기뻐한다.
“북한 당국자들에게 결코 내가 속이려 하거나 꼼수를 두지 않는다는 확신을 갖게 하는 게 가장 어려웠죠. 북한 사람들의 집단적 정서가 이해되기 어렵겠지만 그들과 함께 있으면 그럴 만큼의 절실한 감정적 고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고든 감독)
주 기자는 영화 내용에 대해 몇 가지 의문을 제기했다.
“아버지가 김일성대 물리학 교수인 송연이네 집에서 애완견을 키우더군요. 평양에서 애완견을 사려면 가격이 최저 400달러(약 40만 원)는 됩니다. 이 금액은 현재 김일성대 교수 월급 약 300개월치에 해당합니다. 혹시 친척이 일본에 있어서 매달 송금해 주는 게 아니라면, 깜짝 놀랄 만한 일입니다.”(주 기자)
“나는 평양 거리에서 애완견을 많이 보았습니다.”(고든 감독)
“‘자본주의적 방식’이라고 통제했던 과거와 달리 애완견이 이젠 부의 상징으로 통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주 기자)
“글쎄요. 개들 품종은 별로 안 좋던데요.”(고든 감독)
“그럴 겁니다. 개들은 대부분 중국에서 들어가는 거니까요.”(주 기자)
대화가 막바지에 이르자 주 기자는 “이 다큐멘터리는 평양에서도 아주 핵심적인 구역에서 촬영된 건데 혹시 지방에서 찍을 생각은 안 했습니까? 당신이 지방에 사는 두 아이의 일상을 찍는다고 한다면 북한 당국이 허가해 주었을까요?”라고 물었다.
“사실 북한을 다룬 다큐멘터리는 자금 조달이 너무 어려워요. ‘정치적으로 민감하다’ 혹은 ‘상업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돈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죠. 자금 문제만 해결되면 북한의 지방에도 접근할 수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고든 감독)
최근 북한으로 넘어간 미군 병사의 이야기를 다룬 세 번째 다큐멘터리 ‘크로스 더 라인(Cross the Line)’의 촬영을 북한에서 마친 고든 감독은 “이번이 북한에 대한 마지막 다큐멘터리가 될 것 같다”면서 주 기자와 뜨거운 작별의 악수를 나눴다.
정리=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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