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절연체도 전기 통한다” 가설 입증 김현탁 박사

  • 입력 2005년 9월 3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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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체에 작은 충격을 주면 전기가 통하는 도체로 바뀌는 현상을 처음 규명한 김현탁 박사. 연합뉴스
부도체에 작은 충격을 주면 전기가 통하는 도체로 바뀌는 현상을 처음 규명한 김현탁 박사. 연합뉴스
‘모트 가설’이란 게 있다. 1949년 영국 케임브리지대 네빌 모트 교수가 절연체도 전기가 통하는 금속으로 바뀔 수 있다고 한 뒤 56년간 누구도 증명하지 못했던 이론이다.

한 과학자가 있다. 지방대를 나오고 유학은 꿈도 꿀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지만 30대 중반에 ‘모트 가설’을 규명하는 데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불혹(不惑)을 넘기면서도 계속된 연구는 지천명(知天命)을 눈앞에 두고 결실을 봤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김현탁(金鉉卓·47) 박사가 그 주인공.

‘모트 가설’을 세계 최초로 증명해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그는 의외로 차분했다. 2일 본보와 가진 전화 인터뷰에서 “1년 365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구에 몰두했다”고 말했다. 과연 얼마나 연구에 집중했기에….

본인의 표현에 따르면 그의 연구팀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합숙’을 계속했다.

“다들 지쳤을 때는 힘내자는 뜻으로 ‘우리 이러다 혹시 아내에게 이혼당하는 거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했어요.”

연구를 함께 진행한 강광용(姜光鏞) 박사는 김 박사에 대해 “연구에 몰두할 때는 며칠씩 밤을 새워도 끄덕없을 정도로 지독한 사람”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김 박사의 이마에는 작은 흉터가 있다. 지난해 가을 연구에만 몰두하느라 이마에 있던 작은 상처가 세균에 감염돼 덧난 ‘영광의 상처’란다.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란 그는 상고 출신에 부산대 물리학과를 나와 서울대 대학원에서 이론물리를 전공한 이색 경력을 갖고 있다.

졸업 후 가정형편 때문에 학문을 포기하고 한국타이어 기술연구소에 들어갔다. 하지만 물리학에 대한 열정은 그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입사 8년, 34세인 1992년 직장을 집어치우고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3년 뒤 일본 쓰쿠바(筑波)대에서 고온초전도체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쓰쿠바대 조교수를 거쳐 1998년 귀국해 ETRI에 몸을 담았다.

“일본 유학 시절 ‘절연체는 전기가 안 통한다’는 상식을 깨는 데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했어요. 그런데 쉽지 않더군요.”

김 박사는 모트 가설 연구를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진행했다. 국책연구소에서 연구비를 지원받기 위해서는 당장 상업화할 수 있는 과제를 다뤄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연구를 마라톤에 비유한다. 지금부터 모트 가설의 산업화를 위한 새로운 마라톤을 시작하겠다고 했다.

“이번 성과를 이론적으로 더욱 발전시켜 저항이 없는 ‘꿈의 소재’인 초전도체 메커니즘을 밝히는 데 도전하겠습니다.”

부산대 시절 도서관 캠퍼스 커플로 만난 아내 이은희(李恩希·47) 씨도 한국원자력연구소 연구원으로 있다. 슬하에 올해 대학에 들어간 딸과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을 뒀다.

이충환 동아사이언스 기자 cosm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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