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고싶고 되고싶은 2005 과학기술인]<3>김규원 서울대 약학과교수

  • 입력 2005년 9월 23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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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사진작가 김연정
사진 제공 사진작가 김연정
사람의 뇌혈관에는 무너져서는 안 되는 ‘장벽’이 있다. 이 장벽이 무너지면 뇌로 들어가는 혈액에서 세균이나 독성물질을 걸러주지 못한다. 그러면 뇌신경세포가 손상을 받아 알츠하이머병이나 뇌중풍(뇌졸중) 같은 질환에 걸릴 수 있다.

뇌혈관 장벽을 주시하고 있는 과학자가 있다. 서울대 약학과 김규원(53) 교수다. 뇌혈관 장벽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수수께끼가 그의 손을 거쳐 서서히 베일을 벗고 있다.

우리 몸에 있는 수많은 혈관 가운데서도 특히 뇌혈관은 미지의 영역이다. 이에 매력을 느낀 김 교수는 생쥐와 함께 수년간 밤을 지새우다 기어이 뇌혈관 장벽의 생성 과정을 조절하는 단백질을 세계에서 처음 밝혀내는 개가를 올렸다. 지난 5년간 저명한 국제학술지에 6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면서 이제 명실공히 뇌혈관 분야의 세계적인 전문가로 자리 잡았다. 물론 힘겨웠던 시절도 있었다. 미국 유학 후 부산대 분자생물학과 교수로 부임했을 때였다. 신설 학과라 실험실이 없어 미대 조소과 작업실을 개조했다. 겨울이면 얼었던 수도관이 터져 바닥이 물바다가 되기 일쑤였다. 비가 오면 물이 새거나 정전이 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힘들 땐 고신대 의대 고(故) 박병채 교수와 밤늦도록 술잔을 기울였죠. 환경이 열악하다고 해서 연구를 못하는 건 아니라는 진심어린 조언이 많은 힘이 됐어요. 연구 동반자이면서 인생 선배 같은 분이었는데, 뇌출혈로 그만….”

고등학교 졸업 무렵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면서 김 교수는 ‘청년 가장’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게 됐다. 아르바이트로 등록금과 용돈, 집안 생활비까지 벌어가며 대학을 졸업했다.

평생 과학 외길을 고집해 온 김 교수에게도 ‘외도’의 유혹이 찾아오긴 했다. 고등학교 시절 그림을 곧잘 그리던 그에게 선생님이 미술 공부를 해보라고 권유한 것.

“미술시간에 자화상을 그렸어요. 난 정말 나와 똑같이 그렸다고 생각하고 자신 있게 작품을 내놓았죠. 그런데 한 친구가 자기 내면세계를 표현했다면서 독특한 그림을 그렸더군요. 화가가 되려면 저 정도의 자질은 있어야겠구나 싶었어요.”

그 뒤부터 그는 역시 과학자가 ‘천직’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김 교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집 근처나 교정을 차분히 걷는다. 그러다보면 연구에 도움이 되는 반짝거리는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사실 신경과 혈관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돼 있는 뇌혈관을 연구하자는 아이디어도 걷기운동을 하며 얻은 것이다.

현재 김 교수는 이 아이디어를 실현할 ‘혈관·신경계 통합 연구단’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세상에는 성공보다 실패가 훨씬 많아요. 실험에 실패하면 많은 학생이 능력이 없다며 주저앉으려 하죠. 그러지 말고 실패를 ‘반동에너지’로 삼아 일어나세요.”

최근 그의 연구단은 ‘날개’를 달았다. 지난해 과학기술부가 지원하는 창의적연구진흥사업단에 선정된 것. 뇌혈관 기초연구로 다진 실력을 각종 뇌질환의 예방, 치료에 적용할 계획이다. 아직 뇌혈관에 남아 있는 또다른 미지의 영역에 그의 손길이 닿을 수 있도록 말이다.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

■ 김규원 교수는

1952년 대구에서 4형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서울대 약대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생화학 석사학위를 받은 뒤 1980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1985년 미네소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하버드대 데이나-파버 암연구소에서 박사후연구원을 지냈다. 귀국한 뒤 1987년 부산대 분자생물학과 교수로 일하다 2000년 서울대 약대로 자리를 옮겼다. 2003년에는 이달의 과학기술자상과 제1회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 올해는 호암의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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