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법원장은 지난달 26일 취임식 뒤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말을 귀담아듣고 포용하는 사법부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다들 그 방법이 어떤 것일지 궁금해 했는데, 이 대법원장은 그 해답을 ‘몸으로’ 보여 주고 있다. 취임 뒤 틈날 때마다 법원의 평판사와 외부 기관 관계자들을 만나 ‘말 들어 주는 법관’의 모습을 스스로 실천하고 있는 것.
전국 법원의 민원담당 부서 간부들에게는 동사무소와 구청 병원 면허시험장 등 다른 민원기관을 돌아보며 그곳에서 행해지는 친절을 직접 느끼도록 했다.
▽대법원장과의 점심식사=이 대법원장은 취임 뒤 2주간 서울지역 법원의 평판사 등과 10차례 만나 점심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눴다.
판사들은 근무평정(판사들 성적표)에 대한 스트레스, 해외연수 기회 확대, 육아휴직, 탁아소 설치, 사법부 과거사 재검토 등에 대한 희망사항과 의견을 털어놨다고 한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특별한 주제는 없었지만 그래서 뭐든지 얘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대법원장은 ‘국군의 날’(10월 1일) 행사 참석을 앞두고 하루 전에 행사장 근처인 대전을 미리 방문해 대전고법 대전지법 특허법원 판사 10명과 식사를 함께했다.
7일 오후에는 국제사면위원회(AI) 한국지부 관계자들을 1시간 동안 만났다. 이장희(李長熙)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대법원장께서 우리 위원들과 만났다는 사실 자체로 인권에 대한 사법부의 깊은 관심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국민 이야기에 더 집중해야’ 짧은 조언=대법원장과의 ‘대화’에 참석했던 판사들은 “대법원장께서 주로 우리 이야기를 메모하면서 들었다”고 했다.
대법원장이 판사들에게 짧게 한 당부도 ‘듣는 일’에 관한 것이었다고 한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법관이 판결문을 쓰기에 앞서 먼저 법정에서 말을 통해 재판 당사자를 설득해야 한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며 “어려운 일이지만 재판 내내 당사자들의 말을 충분히 듣고 이해해 억울한 심정부터 풀어 줘야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판사들은 대법원이 과거 판결을 모으는 것과 관련된 논란에 대해서도 물었다고 한다. 대법원장은 “국민에게 구체적으로 무엇에 대해 사과해야 할지 검토하려는 것일 뿐 어느 누구에게도 피해를 끼치거나 인적 청산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고 한다.
“부담스럽고 어려운 자리였다”는 판사들도 있었다.
서울지역 법원의 한 판사는 “거창하거나 심각한 이야기를 나눈 것은 아니었지만 법원의 어른이 우리 이야기를 직접 들어 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하고 든든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법정에서 재판 당사자들의 말을 잘 들어 주는 법관이 되면 국민도 우리와 같은 기분이 들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저 뻣뻣한 판사가 나라니…” 재판모습 모니터해 말이나 행동 개선▼
이용훈 대법원장의 취임과 함께 ‘말 잘 들어 주는 법관, 믿음 주는 법원’을 만들기 위한 대법원의 연구와 움직임도 빠른 진척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연구는 대법원 법원행정처의 ‘법정표준언행연구회’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등 서울지역 5개 법원 판사들과 ‘커뮤니케이션’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대학 교수 및 변호사, 시민단체 전문가 등이 모여 지난달부터 두 차례 세미나를 열었다.
연구 대상은 법정에서 판사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 무의식적인 언행 및 판사 자신도 잘 모르는 습관까지 ‘그대로 두지’ 않는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판사가 ‘보이는 직업’이라는 데 주목해 재판 당사자에게 신뢰를 주는 표현과 행동의 기준을 마련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주된 연구자료는 판사들이 직접 촬영한 자신의 재판 모습과 변호사 등이 법정을 방문해 기록한 판사들의 ‘부적절한 언행’들이다. 판사들은 녹화된 ‘나의 재판 모습’과 변호사들이 지적한 문제점을 토론하며 대학 교수들의 조언도 받는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법정에서 자신의 말이나 행동을 바로잡으려는 판사를 돕기 위해 전문가들로 구성된 법정 언행 ‘클리닉(치료기관)’을 만들어 운영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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