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김, 本報독자에 감사편지

  • 입력 2005년 10월 10일 03시 00분


《미국에서 간첩 혐의로 9년여의 수감 생활을 하다 최근 자유의 몸이 된 로버트 김(김채곤·金采坤·65) 씨가 9일 본보 독자에게 자필 서명이 담긴 감사편지를 보내왔다. 김 씨는 자신의 후원회를 통해 팩스와 e메일로 보낸 ‘동아일보 독자님들께’라는 제목의 편지에서 “오랜 시간 나뿐만 아니라 가족에게 작은 정성을 모아 십시일반(十匙一飯) 지속적인 도움을 주신 이름 없는 많은 분들이 한없이 고맙다”며 “지면을 통해 다시 한번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동아일보 독자님들께…

여러분들께서 관심 있게 보살펴 주신 로버트 김채곤입니다.

여러분들의 성원으로 저에게 부여된 형기를 건강하게 마칠 수 있었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이렇게 긴 시간 저를 기억하고, 기다려 주신 모국의 동포 여러분들께 어떤 말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까요.

저를 두고 희생이다, 억울하다, 이런 말들도 합니다만 차디찬 감옥에서 제 마음을 덥혀 준 것은 여러분들의 관심이었습니다. 저는 불행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과분하다 싶을 정도의 사랑을 받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저를 위한 노래가 만들어지고, 저를 돕기 위해 수만 번의 전화벨이 울리고, 저를 위한 서명운동, 기도회, 거리공연 등 제가 한 일이 이 정도로 가치 있는 것이었나를 생각하면 오히려 부끄러워집니다.

이제 저는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당당하게 한국인이라고 말할 수 있고, 조국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 것입니다.

주저할 것도 없이, 눈치 볼 것도 없이, 여러분들 곁으로 달려가겠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뭐든 하겠습니다.

무엇보다 청소년 교육사업을 하고 싶습니다. 교육전문가도 아닌 제가 거창한 것을 가르칠 수도 없고, 보고 경험한 것을 토대로 민주주의의 기초에 대해 알려주고 싶습니다.

청소년들이 바른 생각을 가질 때 비로소 우리의 미래를 기약할 수 있습니다. 우리 어린 세대에게 할아버지, 또 그 할아버지들이 전쟁까지 하면서 지켜 낸 민주주의의 가치를 존중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되어 주려고 합니다.

안락하고, 평화로웠던 가정이 하루아침에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가족은 저를 원망하기는커녕 각자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가정을 지켰습니다. 기다리는 가족이 있다는 사실도 제가 수형생활을 견딜 수 있는 중요한 이유가 되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가정 해체의 현실이 너무도 가슴 아픕니다. 저는 가정이야말로 어떤 대가를 치르면서도 지켜야 할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말씀드리다 보니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습니다. 제가 조국과 동포들에게 진 빚이 너무 많아서입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제 남은 생을 조국에서, 제 미약한 힘이라도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다 바치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을 직접 뵐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소풍 앞둔 어린아이처럼 설렙니다.

가방에 꿈과 희망, 미래를 담아 가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2005년 10월 9일

로버트 김채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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