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연세대 앞에서 숯불고기 전문점인 ‘만미집’을 운영하고 있는 황성규(47) 씨는 요즘 기분이 좋다.
며칠 전 30대 중반의 남자가 아들을 데리고 식당에 와 “아빠가 이분이 학교에 기부하신 책으로 공부했어”라면서 감사함을 표시했기 때문.
황 씨는 1992년 아버지에게서 식당을 물려받으면서 ‘소중한 약속’도 물려받았다. 아버지 황채봉(72) 씨는 “내 식당을 찾아주는 학생들이 고맙다”면서 1988년부터 연세대에 도서 구입비를 기부했다. 책을 기부하면 많은 학생이 혜택을 받을 것으로 생각한 그는 아들에게 이 일을 계속해 줄 것을 당부했다.
아들 황 씨는 “아버지는 인건비가 부족해 자식들에게 음식 서빙을 부탁하면서도 매년 지원금을 내는 것을 자랑스러워하셨다”고 말했다.
황 씨는 아버지의 기부금보다 200만 원이 많은 500만 원을 매년 연세대에 기부하고 있다. 지금까지 황 씨 부자가 연세대에 전달한 돈은 모두 8000여만 원.
1988년 당시 연세대 측은 “학생들 데모로 깨진 장독대 값을 받으러 왔다”는 식당 주인들 때문에 곤욕을 치르기 일쑤였다. 이 때문에 학교 측은 황채봉 씨의 기부에 반신반의했고 주변 상인들은 “장사 수완이 아니냐”며 곱지 않은 눈길을 보냈다.
하지만 매년 빠짐없이 기부하는 모습에 주변 상인들도 시각이 달라졌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서울 신촌 지역 상인들은 1990년대 초 연세대생을 위한 장학재단을 만들기도 했다.
황 씨는 “불경기 탓에 매출은 별 볼일이 없지만 가끔씩 고맙다며 찾아오는 학생들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며 “식당 문을 닫는 날까지 기부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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