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에서 피해자 유족 가운데 처음으로 ‘희생자 호적정정 결정 통지서’와 ‘희생자 유족 확인서’를 받아든 이종갑(李鍾甲·61·서울 성북구 길음3동) 씨는 “이제야 아버지 영정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 씨의 아버지 이용세(李鎔世·1921년생) 씨가 강제 징용된 때는 1944년 3월. 일본 후쿠오카(福岡) 현 미쓰이(三井)의 미이케(三池) 광업소에서 탄부(炭夫)로 일하던 그는 전황이 악화되자 군인으로 차출됐다.
최전선인 필리핀 민다나오 섬에 배치됐던 그는 광복을 한 달여 앞둔 1945년 6월 22일 미군의 무차별 공습 속에 전사했다.
이 씨는 아버지 전사 소식을 1972년에야 확인했다. 정부가 일본에서 건네받은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한 대일민간청구권신고자 명부에 아버지 이름이 있었다.
그는 이때부터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버지 호적을 정리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1980년 4월 고향인 충북 청원군 오창면 면사무소의 호적담당 직원이 “호적을 빨리 정리하라”면서 ‘숙환으로 서울 자택서 사망’이라고 하자고 하는 바람에 얼떨결에 승낙했다.
이 씨의 어머니는 아직도 남편의 전사를 믿지 않는다. 혹시라도 남편이 집을 찾지 못할까봐 61년 전 남편이 떠난 바로 그 시골집에서 지금도 홀로 산다.
하종대 기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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