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현(任秀玹) 씨는 “그렇게 인형을 싫어했던 내가 옛 인형을 만들게 될 줄은 몰랐다”고 한다. 최근 그는 20년간 만들어 온 전통인형 300여 점에 대한 기억을 담은 책 ‘나의 살던 고향-옛 인형 일기’(한길아트)를 펴냈다.
그가 전통인형에 매료된 것은 33세 때 어느 유품 전시장에 들르면서부터다. 엄마가 아이를 업은 서민적 풍모의 전통인형이 그의 ‘그리움’을 건드렸다. 집에 돌아와 무작정 흙을 주무르기 시작했고 40일 걸려 첫 작품 ‘낙도 처녀’를 빚으며 “마음속에 고인 어떤 아픔이 치유되는 경험”을 했다.
그 후 본격적으로 인형 만드는 일에 몰두했다. 어릴 때 보고 자란 사람들의 기억을 되살리고 전국의 장터를 찾아다니며 품팔이하는 사람들을 관찰했다.
“손자 학용품 값을 벌려고 장터에서 품팔이하는 할머니가 내게는 아름다운 야생화로 보였어요. 거기에 진선미가 있었습니다.”
인형을 만든 지 9년째 되던 해에 가진 첫 전시회 때 그는 손님들에게 선물로 잘 다듬은 배추꼬랑이를 대접했다. 배추꼬랑이를 받아 든 손님 중엔 복식연구가인 고 석주선 선생이 있었고, 석 선생은 ‘가난을 사랑하는 젊은 사람’이 마음에 들어 그를 제자로 삼아 전통머리를 가르쳤다. 그는 또 인간문화재 정정완 선생을 찾아가 침선을, 전통복식사 연구가인 유희경 전 이화여대 교수에게 복식이론을 배웠다.
그는 인형 하나를 만드는 데 보통 2, 3개월, 길게는 6개월을 정성들인다. 흙으로 형체를 빚고 속옷부터 겉옷까지 일일이 지어 입힌다. 자신의 머리를 직접 잘라 수염과 눈썹을 만들어 붙이고 이야기를 만들어 혼을 불어넣어 준 인형만 지금까지 300여 점이다. 그가 만든 ‘전통인형으로 빚은 한국천주교회사’ 80점은 2001년부터 절두산순교자박물관에서 영구 전시되고 있다. 그의 인형들은 고즈넉하고 처연한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그는 “앞으로 한국의 어머니상을 본격적으로 만들 계획”이라면서 “내 인형이 상처받은 사람의 마음을 아물게 해 주는 도구로 쓰였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