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청주에서 태어난 선생은 1919년 2월 기독교 북감리교 목사로 3·1운동에 참가하기로 하고 전국 각지의 동지들과 함께 일본 정부에 내기로 한 독립청원서에 기독교 측 대표로 서명했다.
그는 3월 1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태화관에서 손병희(孫秉熙) 선생 등과 함께 민족 대표로 참석해 독립선언서를 회람하고 만세삼창을 외친 뒤 일경에 체포돼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으며 그 뒤에도 독립운동을 활발히 전개하다 1939년에 생을 마감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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