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 도어맨 김홍길(金弘吉·31) 씨는 최근 이 호텔 소속 7명의 도어맨을 대상으로 치러진 '차번호 외우기 시험'에서 1등을 차지했다.
김 씨는 유명인의 얼굴 사진을 보고 직책과 이름 차종 차량번호를 적는 문제 100개를 모두 맞춰 만점을 받았다.
도어맨들은 VIP들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인물과 차량정보를 달달 외운다고 한다.
예를 들어 호텔 입구에 들어서는 차량의 뒷문을 열면서 'OO 님, 롯데호텔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정중히 맞이해야 한다. 차종과 차량번호만을 보고 누가 타고 있는지를 즉시 알아야 한다는 것.
김 씨는 "호텔을 찾는 고객은 모두 VIP이지만, 이름과 직책 차량번호를 외우는 VIP들은 호텔 경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지방의 한 대학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헌병으로 군 복무를 마치고 1999년 아르바이트로 6개월간 도어맨 체험을 했다.
그리고 '도어맨은 호텔의 첫 인상이자 마지막 인상이라는 매력에 끌려' 2000년 공채시험을 보고 정식 도어맨이 됐다.
공교롭게도 롯데호텔 도어맨 7명은 모두 헌병 출신. 김 씨는 도어맨 생활은 "구타 없는 군대와 똑 같다"고 혀를 내둘렀다.
"선배들이 수시로 던지는 유명인사의 차종과 차량번호 질문에 제대로 대답 못하면 불호령이 떨어집니다."
김 씨가 외우는 VIP용 차량번호는 1000개가 넘는다. VIP 고객의 신상정보를 알기위해 신문의 일반면 기사는 물론 인사와 부음기사까지 꼼꼼히 챙겨본다고 한다. 유명인사의 신상 변동은 스크랩해 정보를 공유한다.
그는 고객 차량번호 외에 호텔을 출입하는 300여대의 택시 번호판도 줄줄이 외우고 있다. 순전히 차량번호를 외우는 습관 때문에 그의 '기억장치'에 입력됐다고 한다.
최근 김 씨는 한 일본인 고객이 지갑을 놓고 내린 택시의 차량번호가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택시번호 중의 하나여서 분실물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며 웃었다.
모범택시 콜센터에 차량번호를 조회해 호텔로 택시를 호출할 수 있었던 것. 일본인 고객은 감사의 표시로 지갑 안에 있던 돈을 사례비로 주겠다고 했으나 김 씨는 정중히 사양했다고 한다.
차 번호 외는 습관은 쉬는 날에도 그를 가만 내버려 두지 않는다.
아내와 함께 버스를 타고 가면서 주고받는 대화도 주로 이런 식이란다.
"여보! 저기 까맣게 썬팅한 차에 누가 타고 있는 지 알아?"
"몰라, 누군데요?"
"A그룹 B 회장님이 타고 계셔."
나성엽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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