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출신으로 30년간 빵 케이크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온 ‘패스트리 셰프(pastry chef)’ 에리크 페레즈(45) 씨. ‘세계 제빵 월드컵’에서 입상하고 미국 10대 제빵 조리장의
한명으로 선정된 그에게도 그 순간 만큼은 긴장됐다.
보안 때문에 주어진 시간은 이틀. 그는 힐러리 의원이 좋아하는 모카 케이크를 만든 뒤 설탕을 이용한 장식과 꽃으로 마무리했다. 그는 “절제되고 깔끔한 멋을 살리면서 힐러리 여사가 좋아하는 재료의 맛을 내려고 했다”고 말했다.
‘르네상스 서울 호텔’ 초청으로 케이크 교육을 위해 방한한 그를 지난달 28일 만났다.》
○다시 만들지 않는 ‘힐러리 케이크’
그는 ‘힐러리 케이크’를 다시 보여 달라는 부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미국 내 프랑스 대사관과 리츠 칼튼 호텔의 셰프로 일하면서 명사들을 위한 케이크를 자주 만들었다. 하지만 이 케이크들은 한 사람을 위한 것이다. 내가 만들었다고 보여주기 위해 다시 만드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백악관의 까다로운 보안 검색에 ‘케이크는 어떠했냐’고 묻자 그는 다소 길게 설명했다.
“‘케이크 보안’은 까다롭지 않았다. 빌 클린턴 정부 시절 미국은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가 요즘처럼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특히 지적이고 당당한 힐러리 여사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런 ‘마담’을 해치려는 사람이 있겠나?”(웃음)
그는 이 인연을 계기로 1999년 당시 클린턴 대통령이 주최한 부활절 특별 만찬 준비에도 참여했다. 그가 만든 것은 설탕으로 만든 1.2m 높이의 거대한 달걀로 토끼 장식을 넣었다. 그는 “한쪽에서는 부활절 축하 모임이 진행되고, 다른 한쪽에서는 코소보 사태에 대한 대책 마련으로 분주했던 두 개의 서로 다른 백악관 풍경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축구와 빵
페레즈 씨의 말에 따르면 축구가 그를 빵으로 안내했다고 한다.
“열다섯살 때의 일이다. 그때 자주 하던 길거리 축구에서 진 팀은 이긴 팀에게 맛있는 패스트리를 사 줘야 했다. 어느 날 게임에서 이겨 패스트리를 먹은 뒤 빈 접시를 돌려주기 위해 가게에 갔는데, 그 때 내 운명이 결정됐다.”
그는 “주인이 주방에서 땀을 흘리며 빵을 만들고 있었는데 마치 마술을 보는 듯했다”며 “그날 처음 본 패스트리 주방은 너무나 놀라운, 새로운 세계였다”고 말했다.
그는 곧장 패스트리를 배우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교사로 보수적이었던 부모는 너무 빠르다며 다른 일을 권유했다. 차라리 아들이 재능을 보인 드럼 연주 등 음악 분야가 낫다는 말도 했다.
“프랑스 사회에서 손을 써서 하는 일은 지적이지 못하다는 분위기가 있다. 한국도 그렇지만 인정받는 셰프가 되는 과정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기 때문에 집안의 반대가 컸다.”
하지만 셰프 지망생은 고집을 꺾지 않았고 17세 때에는 제대로 독립하라는 아버지의 권유로 집을 나와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그는 월드컵에 대해서도 “한국과 프랑스, 두 팀이 예선을 통과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옆자리를 지키던 이 호텔 요크 혼트타임 총주방장의 국적은 독일. 혼트타임 총주방장도 “한국, 독일, 프랑스가 모두 월드컵 대진표의 끝 부분까지 계속 올라가기를 바란다”며 거들었다.
○내 인생 최고의 케이크
페레즈 씨는 1998년 중국 상하이를 시작으로 태국 방콕,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디저트 전문점을 여는 등 아시아 시장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중국에서 파는 케이크 가격은 20∼30달러. 현지에서 싼 가격은 아니지만 상류층이 고객이어서 판매량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과 중국 시장의 차이는 어떨까?
“한국의 패스트리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중국은 시작 단계이지만 곧 베이징에도 새 가게를 열만큼 반응이 좋다. 한국인들은 최근에야 해외 여행을 자주 다니는 중국인들에 비해 맛이나 모양을 비교할 만큼 다양하게 패스트리를 즐긴다. 반면 중국인들은 아직 맛 자체만 느끼는 편이다.”
그는 한번도 직업에 대한 후회는 없었지만 30년 가깝게 패스트리와 살면서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고 했다. 그때마다 스페인 출신으로 이민자의 어려움을 극복해온 아버지가 큰 힘이 됐다.
“최고의 케이크는 아버지의 50회 생일 때 만든 것이다. 미국 워싱턴에서 일하다 케이크를 만들기 위해 프랑스로 갔다. 맛이나 모양보다 케이크를 보고 감동한 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그에게 케이크나 패스트리를 무엇에 비유할 수 있냐고 물었다.
“인생, 그렇게 말한다면 너무 상투적인 답변이다. 인생은 그처럼 달콤하지도 않고, 그렇게 마음대로 되지도 않는다. 나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The pastry is like pleasing people)’이라고 생각한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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