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미쳤었나 봐요.”
18일 ‘사생결단’의 시사회가 끝난 직후 만난 그는 영화 속 자신의 모습을 이렇게 말했다.
“삶이 참 징글맞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아, 징글징글. 진짜로 내 인생 잘살아야겠어요. 남한테 피해 주지 말고.”
‘끝을 보자’는 심정으로 운명의 막다른 골목까지 질주하는 영화 속의 도 경장과 마약 중간 판매책 이상도(류승범)의 모습을 빗대어 하는 말 같았다.
그에게 “어쩌면 남을 무지막지하게 패는 연기를 그렇게 껌 씹듯 쉽게 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사실 사람 때리는 건 너무 어려워요. ‘내가 살아야겠다. 나 좀 살려 달라’는 심정으로 때려요”라고 대답한다.
배우 황정민을 보면 ‘진짜 황정민은 누구냐’는 질문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여자, 정혜’의 있는 듯 없는 듯하던 ‘공기’ 같은 남자일까, ‘달콤한 인생’의 때려죽이고 싶을 만큼 악랄한 놈일까, ‘너는 내 운명’의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순정파일까, 아니면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의 둔감하지만 속정 깊은 사내일까.
“배우는 무대 위에 있거나 카메라 앞에 있을 때만 배우여야 해요. ‘나는 배우야’ 하면서 으스대는 건 배우도 아니에요. 배우의 ‘끼’요? 나이트클럽 가고, 여자 꼬시고, 시도 때도 없이 울고 하는 게 끼가 아니에요. 그건 객기죠. 배우로서의 끼는 자기 안에 묻어두는 겁니다. 참고 기다리는 거죠. 작품이 올 때까지. 그거 못하면 ‘븅신(병신)’이에요.”
배우로서 그는 두 가지 철칙을 가졌다. 어쩌면 이 두 가지가 그를 2006년 4월 현재 국내 최고의 성격파 배우의 자리에 올려놓은 ‘생존의 법칙’일지도 모른다.
“가장 중요한 건 관객으로부터 ‘아이, 7000원(관람료) 아까워’란 얘기를 듣지 않을 작품과 연기를 하는 거예요. 나를 선택해 주는 사람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에요. 돈값을 하는 거죠.”
두 번째는 이랬다.
“철저하게 이야기가 맘에 드는 영화를 해요. 내 배역이 주연이든 조연이든 상관 안 해요. 사람 냄새 나는 얘기를 일단 고르면, 그 안의 인물과 역할은 저절로 뜨는 거예요.”
그는 ‘너는 내 운명’에서 에이즈에 걸린 여자를 죽도록 사랑하는 자신을 말리는 엄마에게 울부짖으며 했던 “엄마가 내 인생 대신 살아줄 거야!”라는 대사가 아직도 가슴속에서 떠나지 않는다고 했다. 고등학생 시절 연극하는 걸 극구 반대하던 어머니에게 황정민 자신이 울면서 했던 말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과 가장 싫어하는 것’을 물었더니, 우선 “아내와의 산책을 가장 좋아한다”고 답했다. 가장 싫어하는 것은 ‘생일 파티’였다.
“내가 케이크의 촛불을 끄기를 기다리며 사람들이 날 쳐다보는 순간이 너무 불편해요. 난 불편해요, 주목받는 건.”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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