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의 영혼을 지켜주소서’오노 요코, 굿판같은 추모공연

  • 입력 2006년 4월 28일 03시 01분


“동서남북의 신이시여, 백남준(白南準)의 영혼을 지켜 주십시오.”

26일 오후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메인홀에서 열린 고 백남준 선생 추모 행사.

선생의 지인들과 관객 등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가수 존 레넌의 부인인 오노 요코 씨가 ‘약속 조각-뼈(PROMISE PIECE-BONES)’라는 제목으로 고인을 위해 특별 퍼포먼스를 열었다.

선생과 각별한 관계였던 요코 씨는 일본말로 선생의 영혼을 지켜 달라는 말을 몇 차례나 외쳤다. 고인을 위해 신을 부르는 주술사 역할을 자청한 것이었다.

이에 앞서 요코 씨는 커다란 꽃병 사진을 배경으로 450여 개의 꽃병 조각을 테이블에 쌓아 놓은 뒤 “꽃병이 깨졌다”고 외쳤다. 선생의 죽음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이어 모든 관객이 꽃병 조각을 하나씩 가져가도록 했다. 관객들은 고인의 뼈를 상징하는 조각을 하나씩 가져가면서 고인을 추모했다.

조각에는 오노 요코라는 이름 약자(Y.O.)와 연도가 적혀 있었다. 관객들이 조각을 가져가는 동안 요코 씨는 아무 말도 없이 뜨개질을 했다. 퍼포먼스는 15분간 계속됐다.

가수 존 레넌의 부인인 오노 요코 씨(오른쪽)가 26일 미국 뉴욕 맨해튼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생전에 절친했던 백남준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특별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요코 씨는 올해 2월 선생의 장례식에도 참석해 “당신이 백남준으로 존재해 준 데 대해 감사한다(Thank you, Paik Nam June, for being you)”라는 인상적인 말을 남기기도 했다.

‘전위 예술계의 여사제’로 불린 요코 씨와 고인의 인연은 40년이 넘는다.

요코 씨는 선생의 장례식에서 “1963년 일본에 머물고 있을 때 ‘유럽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동양 예술가’로만 알고 있던 선생을 처음 만났다”며 “처음이었지만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처럼 친근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후 고인과 동료로 각별한 관계를 이어 온 요코 씨는 “선생은 무슨 일이 생겨도 항상 내 편을 들어줬기 때문에 더 좋았다”며 “지금 그가 너무나 그립다”고 말했다.

고인에 대해서는 “아시아의 자부심이자, 세계를 좀 더 넓힌 혁명적인 예술가”라고 평가했다.

한편 이날 추모 행사에는 선생의 부인인 구보타 시게코(久保田成子) 씨와 장조카 켄 백 하쿠다 씨, 불프 헤르조겐라트 독일 브레멘 미술관장, 고인과 초기 작품을 같이했던 일본 예술가 아베 슈야 씨, 실험영화 감독인 요나스 메카스 씨가 참석해 고인의 업적을 기렸다.

▼조카 하쿠다씨 “삼촌 평소엔 일본해 지우고 동해로 표기”▼

한편 경기 과천시 국립현대미술관이 전시 중인 선생의 작품 중 하나에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한 고지도가 사용됐다는 관람객의 항의를 받고 철거한 데 대해 장조카 하쿠다 씨는 26일 유감을 표시했다. 하쿠다 씨는 이날 추모 행사가 끝난 뒤 기자와 만나 “삼촌은 평소 작품 활동에 필요한 지도를 사용할 때도 ‘일본해’라고 표기된 지도가 있으면 그 부분은 꼭 지운 뒤 ‘동해’라고 쓸 만큼 이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했다”며 “이번에 문제가 된 작품은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봐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하쿠다 씨에 따르면 선생의 드로잉 ‘고지도Ⅱ’에 사용된 프랑스 지도에는 한반도를 둘러싼 바다와 해협 명칭 중에서 ‘대한해협(Dt de Coree)’과 ‘한국해(Mer de Coree)’ 등 ‘한국(Coree)’이라는 명칭이 2개나 등장한다.

그러나 ‘동지나해’를 ‘한국해’로 표기할 만큼 정확성이 떨어지는 고지도인 만큼 지도보다 메시지를 봐 달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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