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복을 빕니다]유치송 헌정회 원로회의 의장

  • 입력 2006년 6월 3일 03시 00분


제5공화국 시절 야당인 민주한국당(민한당) 총재를 지낸 유치송(사진) 대한민국헌정회 원로회의 의장이 2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83세.

한국 야당사의 증인이었던 고인인 건국 직후인 1948년 해공 신익희 선생의 비서로 정치에 입문해 6, 9, 10, 11, 12대에 걸쳐 5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제3공화국 시절 야당인 민중당 원내부총무를 지냈으며, 1967년 통합 야당인 신민당이 출범한 후에는 유진산 직계의 일파인 견지동우회를 이끌며 조직국장과 사무총장 등을 역임했다.

1980년 신군부가 정권을 장악해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한 야당 인사들이 연금 또는 투옥으로 정치활동 규제를 당할 때 민한당 창당을 주도했다.

1981년 제5공화국이 출범할 때에는 유일 야당인 민한당 총재로서 12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그러나 1985년 2·12총선에서 ‘여당인 민정당의 2중대’ ‘관제(官製) 야당’이라는 비판을 받아 신민당 돌풍에 밀렸다.

고인은 이후 대한민국 헌정회장 및 원로자문위원, 통일고문 등을 지냈다.

노무현 정부 출범 후에는 정치 상황에 대한 관심 표명을 하는 일도 꽤 있었다. 2004년 9월 노 대통령 탄핵소추안 발의를 요구하는 보수 원로 인사들의 시국선언에 참여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신탁통치 반대 승리 59주년 기념대회에 참석해 격려사를 하면서 “지금 대한민국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심각한 혼란을 겪고 있다. 정권이 분명히 좌경화하고 있다. 대통령이 사사건건 김정일 편만 들고 대한민국을 지켜 온 사람들은 수구세력으로 매도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문학에도 상당한 소양이 있었다. 조선시대인 1600년대 초 결성돼 18세기 때 박제가 유득공 등의 문장가를 배출한 ‘소북파’ 후손들의 매월 정례 모임에 최근까지도 꼬박꼬박 참석해 왔다고 한다.

고인은 별세하기 직전에도 밤을 새워 가며 소설 ‘다빈치코드’를 열심히 읽는 등 사회 현안에 대해 정력적인 관심을 보여 왔다.

유족은 아들 일호(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씨, 딸 현숙 현방 씨가 있다. 발인은 5일 오전 8시.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02-2072-2091

김정훈 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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