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 70년대 흑백TV로 중계되던 축구 경기에서는 유니폼 색깔로 선수들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았다. 흰색 검은색은 구분이 되지만 파란색과 붉은색, 초록색 유니폼은 ‘약간 짙은 색’ ‘옅은 회색’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1980년 한국에서 컬러TV 방송이 시작된 뒤 뉴스 일기예보에서는 ‘빨간색 고기압과 파란색 저기압 전선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흑백TV 수상기를 컬러로 바꿔야겠다는 욕망에 들떴다.
세계 최초로 컬러TV 방송이 시연된 것은 1928년 7월 3일 영국 런던. 스코틀랜드 출신의 발명가 존 베어드(1888∼1946)에 의해서였다. 비누와 젤리를 만들어 파는 사업에 손을 댔다가 실패한 그는 네온등이 발명되자 이를 이용해 텔레비전을 만들 생각을 했다. 베어드는 1925년 아버지와 친구에게 250파운드를 빌려 다락방에서 기계식 텔레비전 시스템을 제작했다. 연장을 넣어 두던 낡은 상자로 모터의 받침대를 만들고, 빈 과자 상자로 네온등을 넣는 케이스를 만들었다. 주사용 원판은 마분지를 잘라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텔레비전은 30개의 주사선을 가지고 1초에 10번씩 번쩍였다. 베어드는 이를 ‘텔레바이저(televisor)’라고 불렀다. 영국 BBC방송은 1929년 9월 베어드가 발명한 텔레바이저를 이용해 TV 방송을 실시했다. 그러나 이 기계식 TV는 곧이어 발명된 ‘브라운관’을 이용한 전자식 TV에 밀려 사라졌다.
컬러TV 방송이 세계 각국에서 보편화된 것은 1960년대. 우리나라에서도 1974년 아남산업이 일본 내셔널전기와 합작해 최초의 컬러TV를 생산했지만, 과소비와 계층 간 위화감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방송은 번번이 연기됐다. 결국 5공 정권을 창출한 신군부가 1980년 8월 컬러TV 시판을 허용했고, 1981년 1월 1일부터 컬러TV 방송이 시작됐다.
총천연색 TV는 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흑백 교복과 흑백 사진의 추억에 갇혀 있던 우리 사회는 각계에서 저마다 개성과 색깔을 분출해 내기 시작했다. TV 수상기를 통한 색채혁명은 이제 고화질(HD)TV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21세기에도 ‘흑백 광고’를 통해 자신을 알리려는 사람들이 아직 남아 있다. 지지자를 모으기 위해 흑백논리와 이분법을 즐겨 사용하는 정치인이 바로 그들이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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