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황한 종결은 때늦은 꽃상여”

  • 입력 2006년 7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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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만보’를 펴낸 안정효 씨. 안철민 기자
‘글쓰기만보’를 펴낸 안정효 씨. 안철민 기자
만인이 쓰는 시대다. 블로그와 미니홈피를 만들어 자기 얘기를 쓰는 누리꾼, 전화로 말하기보다 e메일과 문자메시지 보내길 좋아하는 사람들, 대학입시 논술시험 준비를 하는 학생들…. 글쓰기는 전문 작가만의 영역이 아니라 모두의 관심사가 됐다.

기왕 쓰는 것, 잘 썼다고 댓글도 달리면 좋겠고 스크랩도 많이 되길 바라는 마음 누구나 있을 터. 글 잘 쓰는 요령은 뭘까? 소설가 안정효(65) 씨의 글쓰기 지침서 ‘글쓰기 만보(漫步)’(모멘토)는 ‘기왕이면 글을 잘 쓰고 싶어 하는’ 많은 사람에게 쓸모가 있을 듯싶다.

“일단 글쓰기 공책을 한 권 마련하고 내일 저녁에 쓸 글을 생각하세요. 오늘 저녁이 아니고 내일이요. 무슨 글을 쓰든지 어떤 내용을 어떻게 써야 할지 미리 생각해 보는 습관을 가져야 해요. 인간은 실제로 작업을 하는 동안이 아니라 계획하고 기다리는 동안 가장 많은 일을 합니다.”

‘글쓰기 만보’는 이런 실용적인 매뉴얼로 가득하다.

“‘주제는…’ ‘구성은…’ 이렇게 두루뭉술하게 소개하면 실제로 적용하기 어렵지요. 대학 때 영미권에서 나온 글쓰기 지침서를 종종 봤는데 글쓰기 요령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놓은 책이 많더라고요. 언젠가 이런 책을 써보겠다고 생각하고 자료를 모아두기 시작했지요.”

30년 넘게 모은 자료 덕분에 ‘존재 이유가 없는 단어는 쓰지 말 것’ 같은 일반인을 위한 팁부터 ‘작품 속 인물은 ‘기성품’을 활용할 것’ 같은 작가들을 위한 지침까지 500쪽 넘는 두툼한 매뉴얼이 두어 달 새 정리됐다.

“내 소설 ‘하얀 전쟁’을 영화화한 정지영 감독이 그러더라고요. 소설이 영화를 보는 것 같다고. ‘설명하지 말고 보여 주라’는 서술의 기초 원리를 적용해서죠. ‘키가 크다’ 대신 ‘키가 184cm다’로 쓰는 식이지요. 첫 문장이 움직임으로 시작되면 독자의 흥미를 끌 수 있어요. 미국 작가 아인 랜드의 장편소설 ‘샘’의 첫 문장은 ‘하워드 로아크는 웃었다’입니다.”

안 씨는 두 사람의 말을 인용해 글쓰기의 제1원리를 밝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읽기 쉬운 글이 가장 쓰기 어렵다’, 그리고 자신의 말 ‘요령은 뚝심을 당하지 못한다’. 우직한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얘기다.

책에는 삽화도 함께 실렸다. 안 씨가 직접 그린 것이다. “중고등학교 때는 만화가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아버지가 반대하셔서 진로를 바꿨지만. 문예지에 등단작을 실었을 때 직접 삽화도 그렸고, 영자신문사에 다닐 때 시사만화가가 휴가 가면 대신 그리기도 했어요.”

안 씨만의 창작 비법을 물어봤더니 책상 위 상자 뚜껑을 열어 보였다. ‘촌놈 콤플렉스’ ‘고생 끝에 출세한 대학교수’ 같은 메모와 최근 신문 지상에 오르는 ‘프랑스인 빌라 영아 유기사건’ 기사 스크랩이 담겼다.

“소설에 써먹을 만한 아이템이 생각나면 그때그때 메모해 놔요. 자주 만나는 친구의 차 안에도 메모 용지와 필기도구를 갖다 놨어요. 작품 쓸 때면 메모지를 다 꺼내서 펼쳐놓고 필요한 걸 골라내요. 가령 대학교수가 촌놈 콤플렉스가 있는데, 영아 유기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됐다든지….”

여전한 창작열로 뜨거운 안 씨. 그는 “인생 최고의 작품을 써야 한다는 초조함에 시달렸는데 언제부턴가 최고의 작품은 나도 모르는 새 이미 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홀가분해졌다. 내가 할 일은 그때그때 충실히 소설을 쓰는 것”이라면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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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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