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조연 없이는 좋은 한국 영화도 없다”는 믿음으로 그들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조연 배우 전문조합(매니지먼트)’인 ‘예지림’을 결성했다. 그들이 함께 무대에 올리는 첫 번째 연극인 ‘하이 라이프(High Life)’의 연습실을 찾았다.
“그 ×새? 그 ××는 어딨어?” “××놈, 니가 죽였잖아!” “내가? 하긴 그 ××는 ×같았어.”
4일 오후 7시. 서울 대학로 ‘극단 파크’ 지하 연습실. 선풍기는 연출가(박광정, 민복기 공동 연출) 옆에 딱 하나뿐. 사우나가 따로 없다.
국내 초연인 캐나다 희곡 ‘하이 라이프’는 마약중독자들인 딕(이남희), 벅(유연수), 도니(조영진), 빌리(정해균) 등 밑바닥 인생의 친구 4명이 은행털이를 계획하며 ‘더 높은 삶’(하이 라이프)을 꿈꾸는 이야기. 여배우도 나오지 않고 별다른 세트도 없이 오로지 배우 4명의 연기력과 이야기의 힘으로 승부를 거는 작품이다.
연출가 박광정은 “요즘 대학로 연극이 너무 연성화되는 것 같아 이번에 배우의 연기를 제대로 맛볼 수 있는 ‘센’ 연극 한번 해 보자고 의기투합했다”고 말했다.
2시간 내내 ‘ㅆ’과 ‘ㅈ’으로 시작하는 욕이 빠지는 대사가 거의 없는 이 작품은 연극으로는 드물게 ‘19세 이상 관람가’다. 박광정은 “욕도 많이 나오지만 주인공 4명이 모두 심한 모르핀 중독자로 나오다 보니 마약하는 내용이 극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연극에는 “‘한잔’할래(마약 한 대 맞을래)?” “요리해 줄까(제조해 줄까?)” 등 마약중독자들의 은어와 실감나는 마약 투여 장면들이 나온다.
오후 10시. 연습이 끝난 뒤 배우들은 인근 맥줏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땀에 흠뻑 젖도록 연습하고 마음 맞는 동료들과 작품 이야기를 나누며 밤새 들이켜는 시원한 맥주. 대학로를 떠나 충무로에서 스타가 된 이들이 그리워하는 ‘연극의 맛’이다. 하지만 ‘예지림’ 배우들에게 돈과 명성을 거머쥔 충무로의 삶이 ‘하이 라이프’일까?
“처음엔 충무로 촬영장에서 소홀한 대접을 받는 선배 연극배우를 보며 자괴감도 들었어요. 대학로에서 잔뼈가 굵은 분이 여기서 뭐하시는 건가 싶어서. 하지만 지금은 저라도 영화해서 돈 벌고 싶어요. 그래야 우리 극단(여행자) 살림에 보탬도 되고 극단에서 받는 저의 개런티나마 다른 배우들에게 더 줄 수 있잖아요. 중심은 늘 연극이죠.”(정해균)
“많은 배우가 그렇듯 한번 영화로 가면 연극판에 다시 오기 힘들어요. 마음은 하고 싶어도 못해요. 무대가 무서워서. 그러지 않으려면 적절하게 균형을 잡고 끊어 주는 것도 필요해요. 저도 ‘메인’은 연극에 두고 영화할 겁니다. 그런 점에서 (오)달수가 참 좋은 예죠. 영화에서 돈 벌어 열심히 연극 하니까.”(유연수)
대학로를 ‘발판’ 삼아 충무로로 도약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생활기반으로 삼아 좋은 연극을 평생 하는 것, 그것이 이들이 꿈꾸는 ‘하이 라이프’다.
11일∼9월 17일. 화∼금 오후 8시, 토 4시 7시 반, 일 4시. 한양레퍼토리씨어터. 2만∼2만5000원. 02-762-0810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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