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883년 오리엔트 익스프레스 첫 운행

  • 입력 2006년 10월 4일 03시 00분


1883년 10월 4일, 프랑스 파리 스트라스부르 역.

덜컹 덜컹 덜컹…. 도열한 관계자들의 환송 속에 장거리 국제열차 ‘오리엔트 익스프레스’가 지평선 끝을 향해 출발했다.

파리를 떠나 루마니아 지우르지우를 거쳐 터키 이스탄불까지. 첫 운행에 나선 이 특급열차에는 저명인사 40명이 타고 있었다.

오리엔트 익스프레스는 처음에는 국제 정규 철도노선으로 시작했지만, 곧 그 이름은 ‘호화여행’과 동의어가 됐다.

미국에서 유학 중이던 벨기에인 조르주 나젤마케르는 신형 침대차를 보고 감동해 귀국 후 유럽 지형에 맞는 컴파트먼트(작은 방에 3, 4개씩의 자리가 마주보고 있는 형태)식 침대 차량을 개발했다.

아이디어는 빌려온 것이었지만 인테리어와 서비스의 수준을 높여 ‘품위’를 강조했다. 호화로운 실내장식과 우아한 분위기 덕택에 이 특급열차는 새로운 사교장으로 떠올랐다.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파리로부터 동쪽으로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터키 이스탄불까지 운행했고, 남쪽으로는 이탈리아의 밀라노, 베네치아, 트리에스테까지 노선을 확장했다. 이어 스위스 취리히,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를 지나 그리스 아테네까지 가는 노선을 추가했다.

제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는 동안 잠시 운행이 중단되기도 했던 오리엔트 익스프레스는 1930년대가 최전성기로 꼽힌다.

이 특급열차의 단골이었던 왕족, 귀족, 외교관, 사업가들은 24시간 서비스를 제공하는 침대차와 수준 높은 식당차를 즐겨 이용했다.

안락하고 호화스럽다는 명성이 유럽 일대에 자자하게 퍼졌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오리엔트 특급 살인’의 무대로 등장하면서 이 기차는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됐다.

그러나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 호화기차도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다양한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사치스러운 열차를 이용할 필요성이 사라졌기 때문. 회사는 호화 객차를 다른 철도회사에 팔거나 대여한 뒤 표 판매 수익에만 의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오리엔트 익스프레스는 점차 노선을 줄여나가다 1977년 5월 19일 파리∼이스탄불 노선 운행을 마지막으로 중단됐다.

오랜 동면에 빠졌던 오리엔트 익스프레스는 1982년 미국인 실업가 제임스 셔우드에 의해 새로 부활했다. 과거 기차가 수송과 관광이라는 토끼 두 마리를 쫓았던 데 비해 셔우드는 철저히 관광에만 초점을 맞췄다.

오늘날에도 런던∼베네치아 구간을 운행하는 ‘베네치아 심플론 오리엔트 익스프레스’와 태국 방콕∼싱가포르를 연결하는 동남아시아의 ‘이스턴 & 오리엔탈 익스프레스’가 달리고 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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