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伊아킬레라우로호 납치사건 종료

  • 입력 2006년 10월 9일 19시 08분


“부인이 슬픔에 젖어 있을 동안 그의 유해는 그가 태어난 도시에 엄숙하게 송환되었다. 그리고 레이건 대통령과 뉴욕의 국회의원들은 이 거친 세상에서 순결과 선량함의 상징으로서 그를 성대하게 맞이하고 있다.”

1985년 10월 21일 뉴욕타임스 1면 기사의 리드는 이렇게 시작된다.

성조기로 덮은 관 옆에 있는 부인과 가족의 사진은 기사의 분위기를 더욱 엄숙하게 했다.

이역만리에서 피살된 미국인 클링 호퍼는 갑자기 순결과 선량함의 상징으로 언론에 부각됐다. 상원의원 대니얼 패트릭 모이니한(민주당)은 그를 “죄악과 잔인함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정의의 상징”이라고 치켜세웠다.

소규모 설비제조업자였던 69세의 평범한 가장은 어떻게 국제적인 영웅으로 떠올랐을까.

사건은 10여 일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5년 10월 7일.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항에 정박 중이던 이탈리아 국적의 여객선 ‘아킬레 라우로(Achille Lauro)’호가 4명의 팔레스타인해방전선(PLF) 소속 테러리스트에게 납치됐다.

납치범들은 극단적인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인 아불 아바스의 주도로 승객과 승무원 400여명을 인질로 잡고 50명의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의 석방을 요구했다.

범행 과정에서 납치범들은 승객 가운데 미국인 11명, 영국인 5명, 호주인 2명을 갑판으로 끌어내 제비뽑기로 처형자 1명을 골라냈다.

운명적인 제비뽑기로 자신의 목숨이 결정된 사람은 바로 미국인 클링 호퍼. 납치범들은 하반신 마비 장애인이었던 그를 사살한 뒤 휠체어와 함께 바다로 던져 버리는 잔인함을 보여 줬다.

미국은 분노했다. 때마침 협상이 결렬된 납치범들이 이집트 항공기를 이용해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본부가 있는 튀니지로 빠져나갈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했다.

미국은 항공모함에서 4대의 전투기를 발진시켜 이탈리아에 있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 비행장에 납치범들을 태운 비행기를 강제 착륙시키는 데 성공했다. 납치범들은 결국 이탈리아 정부에 체포돼 재판을 받았다.

이로써 ‘아킬레 라우로’ 납치사건은 사건 발생 나흘 만인 10월 10일 종료됐다.

서방세계를 경악시킨 해상 테러리즘의 심각성과 테러에 대응하는 미국의 신속함과 강경함을 그대로 보여 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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