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의 티베트족은 매우 호전적인 유목민족이었다. 티베트족은 7세기경 중국의 서쪽 변경을 유린하며 제국을 이뤘던 민족이었다. 티베트라는 이름이 유래한 것도 이 시절이다. ‘눈 위의 거주지’라는 뜻의 몽골어 투베트(토번·吐藩)에서 유래했다.
송첸 감포 왕 시절엔 그 영향력이 인도 북부와 중국 국경까지 팽창했다. 그는 당나라와 네팔의 공주를 각각 신부로 맞아들이기까지 했다.
제국의 힘은 8세기 후반 더욱 확장됐다. 파키스탄 북부와 네팔, 인도 북부는 물론 중국의 간쑤(甘肅)와 쓰촨(四川) 지방을 점령해 실크로드를 관장했고 당나라 수도 장안(長安)까지 침략하는 위세를 떨쳤다.
그러나 토착종교 뵌교와 외래종교 불교 간의 대립, 왕실 내부의 분열이 계속되면서 2세기 동안 누리던 제국의 영화는 사라지고 만다. 이후 티베트는 끊임없는 침략에 시달리며 주변 강국에 조공을 바치는 속국으로 전락했다.
몽골은 1239년 티베트를 점령한 뒤 종교지도자를 대리통치인으로 선택했고 ‘달라이 라마 정치’도 이렇게 생겨났다. 원나라는 한때 말을 듣지 않는 달라이 라마를 제치고 판첸 라마를 식민정책의 동반자로 선택하기도 했다.
중국은 1911년 신해혁명 이후 티베트를 잠시 떠났지만 줄곧 티베트의 종주권을 주장했다. 1950년 10월 초 칭하이(靑海) 성과 쓰촨 성 접경에 집결한 4만 명의 중국 인민해방군은 티베트를 전면 침공했다.
중국군은 침공 10여 일 만인 10월 19일 티베트 동부 전략요충지인 참도(중국명 창두·昌都)를 점령했다. 중국군이 티베트 전 지역을 점령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한 달이었고, 1년 뒤 티베트는 ‘시짱(西藏) 자치구’로 이름이 바뀌었다.
당시 중국군은 칭하이 성 거얼무(格爾木)에서 라싸(拉薩)까지 생필품을 운반하는 데 낙타 4만 마리를 동원했다. 1km 전진에 낙타 12마리씩 죽어 나갔다고 한다.
그 험한 고원에 얼마 전 칭짱(靑藏)철도가 달리기 시작했다. 중국이 독립을 꾀하는 티베트족을 완전 흡수하려는 정치적 목적이 깔려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늘 길’을 달리는 철도가 티베트를 어떻게 바꿔 나갈지 궁금하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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