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후 6시반 한국국제문화교류협회(회장 김봉식)는 35년 간 한국의 심장병 어린이 3057명을 미국에 데려가 수술해 준 미국인 해리엇 하지스(92·여) 씨를 초청해 환영 만찬을 가졌다.
하지스 씨는 9월 '일가상' 수상자로 선정됐지만 무릎 수술 때문에 한국을 방문하지 못했다가 18일 뒤늦게 입국했다.
일가상은 가나안농군학교 창설자로 농촌발전 등을 위해 헌신한 일가(一家) 김용기 선생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1992년 제정된 상으로 내외국인을 가리지 않고 사회 공헌의 업적이 많은 사람에게 수여된다.
하지스 씨가 한국에서 심장병 어린이를 돕기 시작한 것은 1972년부터. 초대 무관(SOFA 사무총장)으로 부임한 남편 캐롤 하지스(1995년 작고) 씨를 따라 왔다.
1950년 6·25전쟁 때 남편이 유엔군으로 처음 한국에 왔을 때와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전쟁 때 용산역 부근에서 미군의 차량을 뒤쪽아 오던 고아들은 더 이상 없었다.
"한국에 다시 왔을 때 전쟁의 폐허는 사라졌지만 입술이 창백한 아이들이 눈에 많이 띄었어요."
서울 용산구 미8군기지 식당에서 자주 점심을 먹었던 하지스 씨는 친분이 있었던 식당 요리사의 딸 이선옥(당시 13세) 양도 선천성 심장병에 걸린 것을 알게 됐다.
그는 곧장 이 양을 미군부대 내 병원에서 진단을 받게 했고 "미국에 가서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진단결과를 통보받았다.
미국의 사회복지단체들이 '심장병어린이 돕기 운동'을 하며 재정지원을 한다는 것을 알았던 하지스 씨는 사비를 털어 이 양을 미국으로 데려가 병원과 복지단체를 주선해 무사히 수술을 마치게 했다.
하지스 씨는 그 후 아이들이 파란 입술을 하고 창백하게 앉아있는 모습이 잊혀지지 않아 아이들을 돕기로 결심했다.
본격적으로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 돕기에 나선 그는 1972년 11월 국제민간협력기구의 지원을 받아 '한국심장회'를 발족시켰다. 병원비와 여비 등은 서울과 뉴욕의 로터리클럽 주민미군부인회 모금, 뉴욕 교포들의 '새생명회' 기금으로 충당했다.
하지스 씨는 "내가 한 일은 별로 없다. 한국심장회에서 수술이 필요한 전국의 심장병 어린이들의 신청을 받아 미국에서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주선하는 일 뿐이었다"며 겸손해했다.
그렇게 시작한 사업은 미국으로 다시 건너간 1992년 이후에도 계속됐다. 그는 2003년 마지막으로 도움을 준 1명의 어린이까지 총 3057명의 어린이에게 '심장'을 선물한 뒤 건강이 좋지 않아 은퇴한 상태. 이번 방한도 마지막으로 한국을 돌아보고 싶다는 그녀의 강한 의지로 실현됐다.
그는 국제문화교류협회가 도움을 받은 과거의 '심장병 어린이' 400여 명을 초청해 큰절을 올리는 행사를 갖겠다고 하자 "그러면 그 애들이 새 옷을 해 입는데 돈을 써야 하고 서울로 오는 데 시간도 낭비하지 않느냐"며 거절했다.
하지스 씨는 과거 심장병 수술을 받았던 어린이들과 만나본 뒤 31일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최우열기자 dns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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