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30년 고깃집의 ‘뚝심父情’ 박지은의 필드 열정에…

  • 입력 2006년 11월 3일 03시 00분


1980년대 삼원가든에서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박수남 대표 가족. 사진 제공 삼원가든
1980년대 삼원가든에서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박수남 대표 가족. 사진 제공 삼원가든
《“누나가 영 ‘협조’를 안 하네요. 우승하면 곧바로 할인 행사에 들어갈텐데….”

“(박)지은이가 원래 고집이 좀 세죠.”

미국여자프로골프(LPGA)에서 활약 중인 스타 골퍼 박지은(27)의 남동생 박영식(26·삼원가든 이사) 씨와 언니 박지현(28) 씨의 농담이다.

정작 당사자는 대꾸 없이 웃기만 했다.

골프가 말대로, 마음대로 되지 않는 처절한 승부의 세계임을 언니와 동생이 모를 리 없다. 어려서부터 지켜본 터라 말은 안해도 요즘 지은 씨의 속마음이 어떨지 훤히 안다.

30년간 서울 강남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삼원가든 박수남(62) 대표의 삼남매를 만났다.

이들이 함께 인터뷰에 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버지 덕분이다.

박 대표는 9월 암 수술을 받은 뒤 바깥출입을 삼가고 있다.

삼원가든은 6일 개업 30주년을 맞는다. 세 사람이 모인 것은 아버지가 삼원가든에서 긴 시간 흘린 땀에 대한 작은 보답인 셈이다.

지은 씨는 최근 이례적으로 한국에서 열리는 대회에 두 차례나 모습을 나타냈다.

대회에 출전하면서 틈나는 대로 아버지를 찾았다.

아버지가 원하는 최고의 선물을 주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성적은 기대에 못 미쳤다.

골프와 부친에 대한 걱정으로 마음고생이 적지 않았다.

그는 “체중이 1㎏ 정도 줄었는데 볼 살만 빠졌다”고 말했다.》

○ 삼원가든의 추억

1976년 경기 시흥시에서 삼원정이라는 상호로 출발한 삼원가든은 전국에 ‘가든(garden) 열풍’을 일으켰다. 가든의 ‘원조’였던 탓에 음식점 이름이 왜 가든이냐는 비판도 자주 들었다. 하지만 삼원가든은 가족이 함께 고기를 먹는 새로운 외식 문화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올해 예상 매출은 220억 원에 이른다.

영식 씨는 “아버지가 맨주먹으로 우리 음식 문화의 변화를 이끌어 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며 “지난 30년의 신뢰를 발판으로 언제나 고객 곁에 있는 삼원가든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지은 씨는 어렸을 때 ‘고깃집 딸’로 불렸다고 했다.

“놀림감이 되기보다는 즐거웠던 기억이 많습니다. 넓은 정원이 있었기 때문에 놀이터로 그만이었거든요. 초등학교 반장이 됐을 때 갈비는 안 돌렸어요.(웃음) 삼원가든이라고 찍힌 책받침을 돌렸죠.”

“삼원가든은 외식 문화에 고기를 끌어들이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봐요. 그런데 우리 집 고기가 좀 비싼 편이긴 하지. 그만큼 질이 좋으니까.”(지현 씨)

“비싸기보다는 양이 좀 적지.”(영식 씨)

▶아버지의 말 (서면 인터뷰)

처음 이곳에 공사할 때는 주변이 논밭이었고, 큰 건물은 현대아파트만 있었어요. 허허벌판에 갈비집을 연다고 하니 사람들이 미쳤다고 했죠. 그런데 아파트는 ‘비둘기장’이잖아요. 정원을 만들면 사람들이 향수를 느낄 거라고 생각했어요. 갈비집을 오픈하고 나니 승용차가 줄을 잇더군요.

○ 골프와 꿈

어느 순간 박 대표가 프로골퍼 지은 씨의 아버지로 기억되기 시작한 것처럼 골프는 삼남매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골프채를 사주지 않고 계속 누나 것을 물려줬어요. 누나가 워낙 골프를 잘했기 때문에 이해했지만 어린 마음에 섭섭했지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시작해 2년간 배우다 그만뒀습니다.”(영식 씨)

골프는 타고난 재능을 보인 지은 씨의 몫이 됐고, 언니와 동생은 자신의 길을 찾았다.

지현 씨는 미국 뉴욕대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전공보다는 평소 관심이 많은 패션이나 베이커리와 관련된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영어 일본어 중국어에 능통해 삼원가든의 중국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막내 영식 씨는 일찌감치 가업을 잇기로 결심했다. 뉴욕대에서 호텔외식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2004년 삼원가든 내에 퓨전 레스토랑 ‘퓨魚(Pure)’를 열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지은 씨에게도 다른 꿈이 있었을까.

“다른 꿈? 그런 생각은 머릿속에 들어 있지 않았던 것 같아요. 어릴 때는 연습하는 것이 무척 싫었습니다. 하지만 승부욕이 너무 강했어요. 일단 필드에 나가면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다짐했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만날 지고 삽니다.(웃음)”

▶삼원가든의 첫 이름은 ‘삼원(三源)’이었죠. 그러다 청결과 친절, 맛으로 최고가 되겠다는 의미에서 ‘삼원(三元)’으로 바꿨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천직인 음식업을 할 겁니다.

○ 아버지는 나의 영원한 캐디

박 대표는 지은 씨의 마음을 가장 잘 읽는 ‘영원한 캐디’다. 거꾸로 딸은 요즘 아버지의 마음을 이렇게 읽는다.

“골퍼 박지은의 아버지는 딸이 다시 정상에 올라 최소한 몇 년은 그 자리에 있기를 바라죠. 하지만 서른을 앞둔 딸의 아버지는 다릅니다. 승부의 세계가 너무 고통스러운 것을 알기 때문에 평범한 여성의 삶을 살기 원하죠. 제 생각도 자주 바뀌는데요, 뭐. 3년간 미친듯이 골프만 해 정상에 오른 뒤 스스로 내려오고 싶지만 갑자기 소박한 결혼을 꿈꿀 때도 있어요.”

사귀는 사람이 있느냐고 묻자 그는 “아직 그런 사람이 없는 게 문제”라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사귀고 싶은 남성상은 정확하게 말했다.

“나는 골프를 치고, 남편은 도와주는 그런 관계는 원치 않아요. 골프가 아닌, 확실한 자신의 일을 갖고 있는 남성이 좋아요. 오히려 내가 내조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연예인 중에서 꼽는다면 다니엘 헤니처럼 자상하면서도 남성적 매력이 넘치는 사람이 좋다고 했다.

▶ 딸이 서른 살 넘어서까지 골프하는 것을 원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요즘 지은이가 부진하기 때문에 최고의 골퍼가 되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그 목표가 달성되면 또 다른 인생의 목표를 설정해야겠죠. 스포츠와 관련된 비즈니스나 다른 분야의 일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 “너 똑바로 못하니”

자수성가한 아버지는 삼남매에게 엄격했다.

“아버지는 언제나 거인이었는데 아프시면서 조금 작아지신 듯해 안타깝습니다.”(지현 씨)

이들은 서로에게서 지워 버릴 수 없는 아버지의 흔적을 자주 발견한다. 지현 씨는 “아버지처럼 독하고 승부욕이 강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지은이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누나들은 남동생이 외모나 24시간 일에 매달리는 모습이 점점 아버지를 닮아 간다며 ‘리틀 박’이라고 놀린다.

“얼마 전 아버지가 ‘너 똑바로 못하니’ 하더군요. 30분 뒤 전화를 걸어와 기분을 풀어 주려고 이런저런 얘기를 해요. 아버지는 그런 분이세요.”(지은 씨)

▶ 아이들을 보면 내가 복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이 바빠 특별히 자식들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었어요.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내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자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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