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전 10시 서울 동작구 흑석동 중앙대 총장실. 시각장애인으로서는 최초로 이 대학 국악대에 입학한 이현아(18·서울맹학교 3학년) 양의 어머니 김희숙(47) 씨는 손수건으로 딸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임신 8개월 만에 600g의 미숙아로 태어난 이 양은 인큐베이터에 있으면서 두 번의 수술을 받던 중 안구가 파괴돼 1급 시각장애인이 됐다. 이 양은 올해 6월 동아국악콩쿠르에서 학생부 정가부문 은상(2등)을 수상한 유망주. 그러나 국악중고교 진학 땐 ‘신체 결격 사유’로 입학을 거절당했다. 이 양은 “만일 국악과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다른 시각장애인처럼 안마사가 되어 어려운 집안 살림을 돕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 “듣고 노래할 수 있으니 난 행운아” 시각장애인 이현아 양
“어느 날 KBS 제3라디오에 출연한 현아 양의 정가(正歌)를 들었어요. 심연을 뚫고 나오는 목소리가 어찌나 맑고 투명하던지…현아 양을 소개한 동아일보 기사도 생각나 부끄러움에 밤새 잠을 못 이뤘어요. 이런 재능을 가진 학생이 앞을 못 본다는 이유로 원서 접수조차 거부하는 일은 없어야겠다고 생각했죠.”(박범훈 총장)
이 양은 이 대학에 장애인 특례입학이 아닌 일반 학생들과 경쟁하는 수시모집에 응시했다. 한 명의 시각장애인을 위해 교수 요원과 학교 시설, 점자 교재를 확충하는 등 막대한 투자를 할 필요가 있느냐는 이유로 교수들 사이에서 격론이 벌어졌다.
실기 심사위원장이었던 김성녀 교수는 “소리의 길은 마라톤처럼 길고 험한 길이라 어설픈 재능으로 뛰어드느니 차라리 다른 길을 가는 것이 낫다”며 “동정심이나 배려가 아니라 정상적인 경연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야 입학시킨다는 원칙을 세웠다”고 말했다.
결국 이 양은 7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합격했다. 3일 휴대전화로 합격 소식을 전해 들은 이 양은 “엄마∼” 하는 외마디 소리를 질렀을 뿐 엉엉 울기만 했다고 한다.
국악 작곡가 출신인 박 총장은 “소리란 악보보다는 입에서 입으로 배우는 ‘구전심수(口傳心授)’가 전통이기 때문에 현아 양이 잘해낼 것으로 믿는다”며 “현아 양이 소리로 세상을 볼 수 있는 그날까지 앞으로 모든 후원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박 총장은 이 양을 위해 6인의 후원회를 조직했다. 김동건 변호사, 신상훈 신한은행장, 신현택 국제문화산업교류재단 이사장 등이 이 양의 한 학기 등록금을 각각 책임진다. 또한 그는 총장직을 그만두면 이 양을 위해 정가를 작곡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김 교수는 이날 면담을 마친 뒤 이 양을 학교 앞 안경점으로 데려갔다. 이 양의 살짝 감은 눈을 가려 줄 수 있는 예쁜 패션 안경테였다. 늘 집안에서만 지내던 이 양에게 주는 스승의 입학 선물이었다.
“네가 살길은 남보다 월등하게 노래를 잘하는 길뿐이란다. 내 별명이 뭔 줄 알아? ‘카리스마, 공갈 협박계의 거두’야. 네가 아무리 울어도 안 봐줄 거야.”
“예, 선생님. 저, 이제부터 시작인 걸요!”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댓글 0